필요한 자료가 있어서 관련 부서에 메일로 자료를 요청했지만 회신이 없었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 업무여서, 자료를 받아야 하는 담당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간단한 숫자 몇 개만 받으면 되는 일이었기에, 금방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데이터를 금방 얻지 못했다. 담당자에겐 당장에 해결해야 하는 업무가 있어서, 엑셀 파일 몇 개 열어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확인해 줄 여유가 없어 보였다. 담당자는 미안하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몇 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이 담당자를 찾는 전화와 호출이 잦았다.
담당자가 일을 처리하길 기다리다, 담당자의 바탕화면에 쓰인 문장이 들어왔다. 익히 많이 본 문장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바탕화면에 적힌 문장과 담당자의 현재 상황이 묘하게 겹쳤다. 담당자의 속마음을 듣지 못했지만, 담당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스트레스 받는 이 상황을 견디고 있었을 것 같았다. 상황이 금방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평소 안면이 있는 다른 직원에게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다행히도 친절한 직원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서 주었다. 담당자가 뭔가를 해주지 않았지만, 내 업무 또한 그냥 그렇게 처리되었다. 결국 이 또한 지나간 셈이다.
이상은 씨의 성녀라는 노래 후렴구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그냥 버티는 건 정말 사는 걸까?”
아주 오래 전에 일이 정말 산더미 같이 많을 때가 있었다. 아침부터 모두 퇴근한 밤 늦게까지 일을 해도 일이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면 이어폰을 꽂고 이상은 씨의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그때 특히 이 가사가 혀끝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을 하면서 난 그냥 이렇게 버티는 게 정말 사는 거냐,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인내가 무척 중요하지만 목적 없는 인내를 해야 할 때마다, 그때 이후로 난 그냥 버티는 게 답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버티는 것말고 상황을 바꿔 보려는 뭔가를 했다.
치밀한 논리적 전개나 이론 없이, 몇 마디로 감동을 전하려는 문장이 있다. 가령 화장실에 붙어 있는 명언들 말이다. 가끔 복사한 것을 복사하고 복사한 것을 옮겨서, 원래 뜻을 오역하고 원작자도 틀린 경우도 많다. 배설이라는 말초적인 상황에도 뭔가 교화의 장소로 삼으려는 대한민국 정서가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런 명언이 가끔 삶이라는 골목에서 모퉁이 돌 때마다 만나는 어려움이나 곤란한 상황을 슬기롭게 넘기게 해 줄 때가 있다.
이발소에 걸려 있는 돼지 가족 그림이나 밀레의 만종처럼, 이런 명언들은 닳고 닳은 맛이 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고단한 삶을 계속 이어나갈 힘을 준다는 점에서 보면 참 위대하다.* 꼭 거대하고 숭고한 종교만이 나약한 인간을 구원하는 건 아니다.
* 혹은 복잡한 자기계발서보다 가성비가 뛰어나거나.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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