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청년 창업 생태계 구축
출구가 안 보인다.
`Exit` 스타트업·벤처 산업에서는 회수 시장을 말한다. 창업하거나 창업가에 투자한 개인·기업이 자금을 찾는 것이다. 이 시장이 콱 막혔다. 입구는 있는데 출구가 없다. 시장이 활기를 띨 수 없다.
회수 시장은 크게 둘로 나뉜다. 인수합병(M&A)이 대표 중간시장, 최종 단계인 상장(IPO)이다. 둘 가운데 중요한 곳이 M&A다. 우리나라가 매우 열악하다. 미국과 비교하면 정확히 알 수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 회수 현황을 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M&A가 322건으로 IPO 40건과 비교해 8배가 넘게 많다. 2011년에도 M&A가 506건으로 IPO 52건과 비교해 10배가량 많다. 우리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지난해 벤처 캐피털 회수 유형을 보면 IPO가 17.8%인 가운데 M&A는 1.0%에 그쳤다. 2011년 역시 18.2%(IPO)와 1.5%로(M&A)로 확연한 차이다.
M&A시장이 없다는 것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우선 투자자다. 벤처 캐피털은 공동 투자자와 약속으로 대개 만기 7년인 벤처 펀드를 결성해 벤처에 투자한다. 그리고 만기가 도래할 시점에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피투자 벤처 기업이 IPO할 단계가 아니라면 회수 방법이 없다. IPO할 단계라도 주식시장이 침체면 문제다.
최근과 같이 코스닥 상장이 여의치 않고 주가도 과거와 비교해 크게 낮은 상태에서는 벤처가 쉽사리 IPO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투자자만 속앓이한다. 당장 지난해 코스닥 IPO기업 수는 21곳으로 2010년 74곳, 2011년 57곳과 비교해 절반 이상 줄었다. 회수 기회가 절반 이상 낮아진 셈이다. M&A시장이 크게 형성돼 있는 미국과 비교해 투자자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주식시장이 좋으면 IPO, 하락하면 M&A를 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스타트업·벤처 창업가에도 마찬가지다. 기술 융·복합시대 단독으로 구현 가능한 기술·상품·서비스는 많지 않다. 다른 스타트업·벤처와 손잡으면 시너지가 크다. 이는 창업가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예컨대 설비 등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중견기업에 매각하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경우다. 제때 매각하지 못하고 근근이 회사를 유지하다 보면 기술이 노후화한다. 꽃을 피울 수 있는 기술이 사장되는 이유다. 우수한 기술자·기업가가 능력을 펼치는 것을 막는다.
M&A 시장이 없다는 것은 벤처캐피털의 초기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도 된다. 펀드 만기가 대개 7년이어서다. 길어도 5~6년 내에 투자 후 회수를 해야 하는데, 초·중기 기업은 이 기간 안에 회수를 확신할 수 없어서다. 자연스럽게 상장을 앞둔 프리 IPO기업에 집중하고 이는 시장에서 안정적인 곳에만 투자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펼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시장이 활성화하지 않는 이유로 여러 가지가 꼽힌다. 인수 주체여야 할 대·중견 기업 인식 문제다. 벤처 보유 기술에 제대로 가치를 쳐주지 않는다. 벤처 기업가에서도 문제를 찾는다. 필요 시 과감하게 회사를 매각해야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M&A 업계 한 관계자는 “협상 막바지에 갑자기 매각을 못하겠다고 돌아서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정책적 접근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가 시장 만들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없다. 민간에서는 세제 지원 등을 요구하지만 재정 당국을 설득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시장이 부정적이지는 않다. 과거에 비해 기업가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전자신문이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과 공동으로 새싹포럼 참여 스타트업 6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벤처활성화 과제로 전체의 14.9%가 `M&A시장 확대`를 꼽았다. `실패 후 재기 가능한 환경 구현`(26.5%)과 `자금 지원 확대`(23.2%) 답변이 다음으로 높았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M&A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소프트웨어(SW)와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강한 스타트업이 나오는데 이들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M&A를 적극 활용하려 한다”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인센티브를 주거나 인프라를 잘 구축하면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기업 오픈 이노베이션 관심 고조도 마찬가지다. M&A가 리스크(위험)가 크지만 기술개발 속도를 대폭 단축시킨다는 측면에서는 효과가 있어서다. 글로벌 대기업이 M&A를 경영기법에 적극 활용하는 이유다.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엔 기술이 일정 기간을 두고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지금은 그 기간이 대폭 줄었다”며 “대기업이 빠르게 변하는 기술을 추격하려면 M&A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속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비 측면에서도 M&A가 효과적이다. 미국 제약업계에서는 M&A를 통한 신약개발 소요 비용이 자체 개발보다 8분의 1 수준으로 본다. 대기업이 신약을 개발하는 데는 검토부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무엇보다 완성도 높은 상품 개발 확신이 없으면 개발 자체를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제노스코 고종성 R&D센터 CTO는 “대형 제약사는 조직이 커져 혁신이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 아이디어를 활용한다”고 말한다. 다만 대기업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인식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문어발식 확장 지적이다. 김형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대기업 인수가 국가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우리 사회가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다양한 시장 참여자 등장 필요성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활동하는 기업과 기술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코스닥이 침체된 이유 가운데는 상장사를 제대로 평가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글 : 김준배 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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