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마치고 지난 주 저녁, ‘힐링콘서트 카페 휴’가 열린 대학로 ‘가나의 집’을 찾았다. 카페 휴는 각자의 위치에서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모두가 사는 곳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살아가는 데에 대한 고민은 하나 정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공연은 바로 이 고민에서 그 여정을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쳇바퀴 안에서 달리는 다람쥐처럼 살다가 다른 ‘다람쥐들’이 사는 이야기를 구경하는 듯한 공연을 관람하자니 기분이 묘했다.
빌딩가 사이 작은 커피 전문점 ‘카페 휴(休)’에 아침부터 단골 손님 3명이 차례로 모여든다. 앳된 외모에 락밴드에 열광하는 인력관리회사 김태희 과장, 매번 소재 고갈에 시달리는 무명의 작가 심은하, 병원에서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땡땡이 치는 병리과 강부자 조교수. 이들은 카페 아르바이트생 수아와 같이 수다를 떨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다. 김 과장은 밉상인 직장 상사 때문에, 심 작가는 원고 마감 때문에, 강 조교수는 연구실에 처박혀 일하는 것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수아는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것 가지고 커피집 사장님이 핀잔을 준다면서 “내가 커피를 10리터를 마시겠어, 20리터를 마시겠어”라며 알바생의 서러움을 토로한다.
‘그래 맞아. 쪼잔하게..’ 어느새 필자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과거에 서러웠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배우들에게 투영되었다. 힐링 좀 받아보겠다고 공연을 보러 왔는데 오히려 불편해지는 느낌이었다.
“30대가 되면 무언가를 이룰 줄 알았어.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데, 그 때의 열정은 남아있지를 않아. 다 닳아버린 걸까?”라는 독백에 “숨이 차오를 정도의 열정만이 열정은 아니야. 여기까지 온 것으로도 열정 때문에 가능했던거야”라고 다독인다.
좀 전까지 우울한 이야기를 했던 단골 손님들은 화제를 전환하여 각자가 열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의 공연 보러가기, 휴가 내고 여행가기,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문득 상사 휴가와 날짜가 겹쳐있어 휴가를 쓰지 못한다는 현실에 이야기는 다시 수렁에 빠진다. 그리고 ‘갑과 을 이야기’로 흘러간다. 연말정산 이야기를 하며 국가마저 ‘을’을 착취한다고 이야기하니까 심 작가의 한 마디, “진정하세요. 전 뜯길만큼 벌어봤으면 좋겠어요”라는 애잔한 대사에 관객들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런데 이야기는 더 매몰차게 절정으로 치닫는다. 20대 때 사랑했던 옛 남자친구가 우연히 수아의 일터에 커피를 마시러 들어온 것이다. 수아는 아르바이트생 처지인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자고 잘 지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묻기는 커녕 분주하게 주문한 커피를 만들더니 “카페라떼 나왔습니다”라고 짧게 말한다. 그런 수아에게 남자는 커피를 들고서 문득 떠오른 게 있다는 듯이 뒤돌아보더니 “나 다음 달에 결혼해”라는 쐐기를 박고 나간다. 애써 지켰던 자존심이 씁쓸하게 무너진다.
“알바로 시작했는데..익숙해져 버렸나봐.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살까?”
“그런데 왜 우울해보여?”
“..행복하지 않으니까”
“익숙해진 게 아니라 연습하는 거라고 생각해. 넌 특별하진 않지만 빛나고 있어”
공연장에 입장하기 전에 관객들은 쪽지 하나를 써서 냈었다. 이른바 ‘걱정 쪽지’. ‘요즘 당신을 가장 걱정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답변을 적은 쪽지들을 모아 그 중에 하나를 뽑은 뒤 사연의 주인을 무대 위로 불러내었다. 관객의 걱정을 들어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년 뒤의 자신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말해보라고 시킨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관객의 이야기 또한 하나로 어우러져 공감의 증폭을 최대한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연은 상사가 골프연습하다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휴가를 갈 수 없게 되었다는 전화 한 통을 받고서, 좀전에 물거품이 되버린 줄 알았던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어 기뻐하는 장면으로 훈훈하게 끝이 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은 평범하고 비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의 일상엔 남들이 꿈꾸는 무언가가 반드시 숨어있다.
모두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보니 김 과장은 열정이 있는 심 작가를 동경하고, 심 작가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강 조교수를 부러워하고, 강 조교수는 불안정하지만 경쟁 없는 삶을 사는 수아를 부러워하고, 수아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모두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삶을 ‘살아내면서’ 자신이 갖고 있지 않는 걸 동경하며 살아간다. ‘힐링’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카페 휴’는 커피 한 잔의 따뜻함, 그 이상의 위로가 되었다.
안경은 기자 elva@venturesqua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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