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스 창업후 3년간 배운 5가지

약 한달 뒤면 창업한 지 딱 만 3년이 된다. 그리고 5일후면 왓챠 앱이 출시 된다. 그 동안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기록해둔다는 느낌으로, 3년간 배운것들을 필기해둔다는 느낌으로 글을 써본다.

 

절실함

벤처를 창업하는데 있어서, 아니 창업 후에 꾸준한 에너지와 혁신에 대한 의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절실함” 인 것 같다.

벤처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말도 안되게 많은 어려움들과 계속 부딪히게 된다. 자잘한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예를 들면, 부모님의 반대라든지, 생각보다 돈이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고, 사람도 부족하고, 상황이 예상과 반대로 흘러가고, 감정기복도 심하고(심지어 나만 그런게 아니라 동료들도 그러함), 동료들 간(나-동료, 동료-동료)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하고, 달려가고 있는 큰 방향성을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며, 팀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에도 팀이 모티베이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비전에 대한 리마인드도 잘 해야하고, 현금흐름도 신경써야 하고,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꼭 해야하는 서류작업도 많고, 크고 어려운 선택을 빨리 내려야 하는 상황도 끊임없이 찾아오고..

이런 문제들을 꾸준히 잘 이겨내면서 “좋은 팀”을 꾸리고 “product-market fit을 찾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을 “비지니스”로 잘 이어서 “빠르고 큰 성장”을 해내야, 비로소 우리가 처음 벤처를 시작한 의미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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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모든 조건이 OR이 아닌 AND조건으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에, 절실함이 없으면, 중간에 흔들리고 포기하고 싶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을 것 같다. 절실함은 벤처를 하면서 포기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 기회비용이 얼마나 큰지에도 영향을 받는다. 케이큐브벤처스 임지훈 대표가 종종 블로그나 VC세션에서 이야기 하듯이, 변호사, 교수, 컨설턴트들은 벤처에 실패했을 때 다시 원래의 본업으로 돌아가기가 쉬우니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보다 절실함이 부족할 것 같다.

 

좋은 제품

커머스 분야가 아닌 product company로 한정지어서 이야기 해보자. (나는 커머스를 잘 모르니까) 초기 스타트업에서, “좋은 제품”보다 중요한 것은 “동료” 밖에 없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동료”가 중요한 이유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만큼 좋은 제품은 아주아주 중요하다.

스타트업 네트워킹 행사나 각종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 가끔 참석해보면, 나는 이렇게 많은 벤처인들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것에 대해 놀랄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아주 부러워했었다. 아, 저들은 이미 좋은 제품을 잘 만들었고, 그것을 홍보하거나 영업을 하거나 투자를 받거나 좋은 파트너를 만나 제휴를 하려고 하는구나. 나는 지금까지 뭘 했나.. 하고 자책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그것을 깨닫고는 명확한 목적이 있지 않으면 난 벤처 네트워킹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아주 알차고 완벽하게 낭비없이 사용했다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하지만, 조금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집중력을 흐뜨러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행사 참석할 시간에 차라리 밤도 많이 새면서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과 맥주 한잔을 하는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다.

제대로된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마케팅, 영업, 채용을 하기 위해 그런 행사에 가는 것은 큰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제품이 최고의 마케팅이며, 최고의 영업이고, 최고의 채용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된 제품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싶어한다. 본인이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면, (그리고 아마 아닐것이다) 영업이든, 마케팅이든, 제휴든, 무엇이든 제품부터 시작해야 한다. (잘 생각해보면 심지어 잡스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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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좋은 제품을 만든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프로토타입 정도로 계속 찍어내보면서 주변사람이든, FGI를 모집해서든 최소한의 마케팅을 해서든, 타겟고객인 사람들을 모아 계속 피드백을 받으면서 product-market fit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쏟아 부어야 한다. 어떤 부분이 고객이 호응할 포인트인지, 실행 해보고 피드백 받아보지 않고서는 모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횟수의 try로 찾으려고 엄청난 고민과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실행력으로 찾아내야 한다. 고객이 가려운곳이 어디고, 그걸 어떻게 긁을 수 있는지. 휴맥스 변대규 회장님이 말씀하신 ‘8번 기능‘같은 걸 찾아내야 한다.

만약 어느정도 실마리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면, 그 모델 안에서 유저에게 최대한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product-market fit을 찾았고, 그 분야가 유망해 보인다면, 분명히 어떤식으로도 경쟁자가 생길 것이다. 그게 다른 경쟁력을 앞세운 벤처기업이 될 수도 있고, 우수한 제품 제작 인력과, 자본과, 제품 배포(마케팅)에 강점을 아주 잘 갖춘 대기업일 수도 있다. 그럼 선발주자로서의 장점을 확보하기 위해서 최대한 후발주자에 대한 진입장벽을 갖춰놓아야 한다. 그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백엔드의 기술력일수도 있고, 아주 뛰어나고 (어떤 이유로든) 베끼기 어려운 UX일수도 있고, 아주 빠른 속도의 사업전개일수도 있다. 쉽게 말해 product-market fit을 찾는것도 고생인데 찾고나선 더 개고생임. 하지만 훨씬 즐거운 고생이 아닐까.

 

좋은 팀

기본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은, “좋은 팀”이 있으면 “좋은 제품”을 잘 만들 확률이 높고 “좋은 제품”이 있으면 “비지니스(혹은 자본 – 투자일 수도 있다)”를 만들어낼 확률이 높고, “좋은 채용”을 할 확률이 높다. “좋은 채용”을 하면 “더 좋은 팀”이 되고 “더 좋은 팀”은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에 좋다. 결국 “팀 -> 제품 -> 비지니스(자본) -> 채용 -> 팀 -> 제품 -> ..” 의 선순환 구조가 되는 것.

그런데 딱 처음에 창업을 하면 좋은 팀, 좋은 제품, 좋은 비지니스 중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런 닭과 달걀문제를 풀어야 한다. 비전이 확실하면 그 비전을 이용해서 주변의 믿을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설득해 팀에 합류를 시켜야 한다. 비전보다 당장의 실행력에 자신이 있다면 두명이든 세명이든 좋은 제품을 어떻게든 조그마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찌 되었든 닭이든 달걀을 만들어야 한다. 이 선순환을 시작시키는 것이 창업자의 첫번째 임무다. 물론 시작시키고 나서 계속 선순환이 되도록 노력하는것도 당연히 꾸준히 해야하고.

그리고 좋은 팀이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팀”이 좋은 팀이다. 멤버 각각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팀이 좋은 제품을 못만들어내면 그건 “좋아 보이는 팀” 이지 “좋은 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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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팀을 꾸리려면 여러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우선 좋은 동료가 있어야 한다. 김창원 대표님 블로그의 “먼저 온 사람들” 글을 읽어보면 잘 알수 있듯이,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 크게 보면 철학은 초창기 몇명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만큼 좋은 사람이 있는 곳에 좋은 사람이 또 모인다. 그래서 최초의 팀의 사람들이 얼마나 믿을수 있고, 얼마나 좋으냐가 그만큼 중요하다. 두번째는, 좋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큰 꿈이 있어야 한다. 만약 MIT 박사 10명이 모여서 작은 버티컬 서비스 (아주 잘 된다면 연매출이 50~100억 정도 될 것 같은)를 만들려고 하면, 다들 떠날 것이다. 비전과 꿈이 커야 하고, 해결할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한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의 근거는 대표의 의지일 수도 있고, 팀의 능력일 수도 있다. 어디에 기인하든, 아주 크지만 이룰 수 있을것만 같은 비전이 필요하다. 세번째는 팀웍이다. 어떤 조직이든,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일하다 보면 “나랑 맞는 사람과 일하는 것” 혹은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 팀에 없는 것”이 업무 만족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채용을 잘 해야 하고, 팀웍이 잘 이루어지도록 꾸준히 신경써야 한다. 능력만 뛰어나다고 능사가 아니다. 일이 진행되야 하고, 혼자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좋은 비전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자그마한 자원을 가지고 큰 비지니스를 만들려다 보면, 힘들고, 정신없고, 체력도 바닥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것은 비전이다. 물론 글의 시작부분에서 썼듯, 절실함이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지만, 비전은 그 방향을 꾸준히 바라보게 해주는 등대다.

하지만 그 비전이 뭔가 가치 지향적이 아니라, 자본 지향적이라면, 그 비전은 더 나은 금액의 비전으로 쉽게 대체된다. 로드맵이 쉽게 변경되고, 사내 정책도 쉽게 변경되며, 본인도 동료들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가치 지향적인 비전은, 좀 더 명확화 되거나 좀 더 확장되거나 조절될 수도 있다. 그것이 Paul Graham이 말하듯 ‘서쪽으로’ 계속 전진하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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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풀고 싶은 문제를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어느정도 모호하고 추상적일 수 있다. 동료들이나, 같이 일하고 싶은 잠재적인 동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다보면, 조금 더 구체적이 되고, 동료들의 머리속에서도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점점 또렷해지게 된다. 모호하고 두리뭉실하더라도, 가슴을 뛰게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진짜 승부

중소기업이 아닌, 벤처기업이라면, 가능성이 낮다 하더라도 “정말 큰 비지니스”를 하려고 도전해야 한다. 작고 탄탄한 비지니스를 원하는 기업은 벤처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그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큰 비지니스를 하려고 한다면, 결국 언젠가는 대기업과 싸워야 한다. 시장이 크고(혹은 커질 것 같고), 기회가 있다면, 대기업과의 승부는 결국에는 찾아온다. 한국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가용 자원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벤처의 1년 예산의 몇배나 되는 돈을 대기업은 몇달의 마케팅 예산으로 쓸 수도 있다. 벤처는 개발자가 부족해 허덕이지만, 대기업에는 몇 년간 산전수전을 다 겪은 괜찮은 개발자들이 수십명, 수백명씩 있다. 벤처는 기사 하나에 울고 웃지만, 대기업은 기사를 내고 싶으면 나온다. 이런 자원차이는 천지차이지만, 승부를 피할수는 없다. 어떻게든 없는 자원을 똘똘 뭉쳐서, 더 빠르고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 더 효율적인 마케팅을 하고, 더 친밀한 고객응대를 해야 하고, 싸워서 이겨야 한다. 소비자들은 벤처기업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더 나은 경험, 더 익숙한 경험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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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는 2012년 8월 16일에 웹 버전을 오픈했다. 그리고 9개월동안 유저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피드백을 받았고, 그 피드백을 반영해서 많은 개선을 했다. 회원도 13만명을 모았다. 하지만 가장 많이 받은 피드백은 아직 반영하지 못했는데, 그게 바로 모바일 앱 버전 출시다. 5월 28일, 왓챠의 안드로이드 버전과 아이폰 버전이 드디어 나온다. 웹에서는 많은 경험과 많은 개선을 이루어 냈지만, 모바일은 처음이다. 잘 해야 한다. 살아 남아야 한다. 유저를 만족시켜야 한다. 창업 후 큰 마일스톤을 찍을 때 마다 드는 한마디가 다시 떠오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 : 박태훈
출처 : http://blog.frograms.com/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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