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에게 위기가 발생하면 여러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해당 기업의 위기관리에 대하여 인터뷰나 코멘트를 요청 받곤 한다. 이때마다 빠짐없이 듣는 질문이 있다.
“이번 A기업의 위기관리는 성공했다고 보시나요? 실패했다고 보시나요?”
정말 어렵고 답이 없는 질문이다. 외부에서 해당 기업의 위기관리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럿이 있다. 하지만, 그 성패에 대한 기준이 해당 기업 내부에도 똑같이 존재하고 적용되는지는 그 기업내부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즉, 하나의 위기와 위기관리를 두고 안팎의 성패 판정이 언제나 다를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다름이 있을까?
첫째, 위기 발생시 해당 기업이 가진 실질적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는 외부인들은 알지 못한다.
공장에 안전사고가 일어나 협력 업체 직원 10여명이 사망하는 위기가 발생했다고 치자. 해당 기업은 내부적으로 금번 위기를 관리하는 목적을 수립하게 마련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최상위 의사결정자들의 의중을 기반으로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외부에서는 이번 사고로 떨어진 회사의 안전관련 명성을 회복하는 것. 피해 업체직원들에 대한 우호적 사후관리 및 생산 정상화. 사후 정부규제에 대한 책임 수준 관리 등등을 위기관리의 목적과 목표로 놓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 내부에서는 해당 위기에 대한 관리 목적과 목표를 “빠른 생산 정상화. 납품 일정 준수”로만 단순하게 맞출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부 외부 어떤 논란이 발생하건, 피해를 입은 협력업체 직원들과 가족들이 어떤 분란을 일으키건, 정부규제기관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책임을 요청 받던, 무조건 일단 빠르게 생산시설을 정상화해 대형 납품일정을 맞추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기업은 이런 목적과 목표 하에 일사불란하게 정부 현장 조사를 어려 수단을 통해 단축시키고, 보험사와 로펌을 써서 피해자들을 일단 관리 무마하고, 공장을 비워 새로운 인력들을 투입 생산시설을 정상화시키는 조치들을 해 단 수 일만에 생산을 개시하고 중요한 납품일정을 맞추었다고 치자. 해당 기업은 위기관리의 목적과 목표를 100% 이루어 낸 셈이다.
이런 기업에게 외부에서 “해당사는 땅에 떨어진 기업 명성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지원책도 제시하지 않았고 정부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고, 책임도 회피하려 했다. 그래서 해당 기업은 위기관리에 실패했다고 본다”고 한 지적들이 공감 될 리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직자의 성추행 논란에 있어서도 해당 공직자가 마음속으로 세운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가 “위기관리를 통해 종편이나 여론평론가로 다시 컴백하는 것”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지적은 성패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생각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대리점에 대한 불공정 거래행위 논란에 휩싸인 기업에게도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는 “VIP에 대한 방어와 국민적 관심 모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항공 사고를 겪은 항공사에게도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는 “사고 책임 소재의 최소화와 조종사 및 승무원들에 대한 케어”가 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회장이 구속되는 수모를 겪은 그룹사에게도 위기관리 목적은 “VIP를 위한 방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부살인 논란에 휩싸인 기업의 경우에도 주된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는 ‘주가 정상화’가 될 수도 있겠다.
따라서 이런 내부적인 실질적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 전문가가 해당 위기관리가 성공했다 또는 실패했다 판정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단, 여러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를 예상해서 그 각각에 대한 성패 판정은 대입이 가능하다고 본다. 즉, 여러 시각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둘째, 위기관리 성공과 실패를 결과적으로 판정하는 사람은 기업의 최고의사결정자 뿐이다.
이 부분이 또 하나의 큰 변수인데, 해당 기업이 세운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를 내부적으로 충분히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최고의사결정자의 판정은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내부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였던 생산시설을 정상화해서 중요한 납품 기일을 성공리에 맞추었다고 보고하는 위기관리담당 임원에게 최고의사결정권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뭐 그리 대수냐”이야기할 수도 있다. “내가 몇 일 전 새벽에 공장에 가보니 나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회사가 곤경에 처했는데 다들 집에서 쉬고 있던 거냐?” 하면서 해당 임원과 생산책임 임원들을 해고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위기관리에 성공했다고 해야 할지 실패했다고 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 발생한다.
“VIP를 일단 방어해서 집행유예를 받아 냈습니다. 이번 위기관리에는 저희가 성공했습니다”라는 보고에 최고의사결정권자께서 “그걸 왜 1심에서 받아내질 못했어? 또 처음부터 불구속 수사도 가능했을 텐데 왜 구속까지 받게 만들었지?”라며 실패로 판정하시면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전체적인 위기관리 상황을 보고 상당히 자의적으로 성패를 판정하고 사후 조치를 취하는 한 외부 전문가들이 이러 쿵 저러 쿵 성패에 대해 내리는 판정은 아무 의미가 없을 뿐이다.
셋째, 한국의 경우 기업 위기관리 성패 기준이 없다. 따라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위기관리를 잘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 사라진 기업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위기관리를 잘 했다고 평가 받아 더욱 승승장구하고 성장하는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위기관리에 대한 피상적인 관심을 넘어서게 만드는 실질적인 위협들이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다는 생각들을 많은 기업인들이 한다. 골치 아프고, 돈이 들고, 망신살이 뻗치는 해프닝들은 자주 발생하지만, 실제로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위기란 별반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판정도 유효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전문가들의 성패 판정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외부 전문가들이 디테일에 집중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고 발생 이후 첫 번째 기자회견이 왜 12시간만에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는가? 이는 상황분석과 의사결정 그리고 거리를 극복한 원격 의사결정 협업 체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닌가?” 같은 지적들이 전부일 수 밖에 없다.
“왜 처음부터 공감과 조의를 표명하지 못했나? 평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팩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시할 수 밖에 없다. 왜 대응이 느렸던 것인가? 왜 보고가 누락되거나 지연되었던 것인가? 왜 의사결정은 그렇게 내려질 수 밖에 없었나? 왜 실행 명령 이후 실제 실행은 그렇게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나? 왜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에서는 이런 원칙들이 사라진 채 커뮤니케이션 되었나? 왜 이 기업은 여론을 읽지 않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나? 왜 이 기업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에 등한시 했나? 등등의 세부적인 문제들을 지적하는 것이 전부 일 뿐이라는 것이다. 세부적인 성패만을 판정 가능할 뿐이다.
실제로 위기가 발생한 기업들 내부에 들어가 자문을 할 때도 내부 이해관계들과 정치적 판정 기준에 따라 외부 전문가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판정’ 보다는 ‘개선점에 대한 제시’일 수 밖에 없다. 미시적인 조언만 가능할 뿐이라는 의미다. 현실적인 이야기다.
글 : 정용민
출처 : http://jameschung.kr/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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