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3일 로마 바티칸 성당.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다섯 번째 투표가 끝난 오후 7시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솟아 올랐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성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프란치스코는 광장에 모인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프란치스코는 “다른 사람을 위해, 세계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며 자신이 새 교황임을 알렸다. 이 순간 바티칸 광장의 수만명의 사람들은 동시에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 태블릿PC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소셜미디어에 지인들에게 ‘역사적 순간’을 생중계했다.
8년전인 지난 2005년 교황 베네딕토 2세의 즉위 순간 바티칸 광장(사진 아래)과 비교해보면 인류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2005년엔 디지털 카메라(일명 똑딱이)나 DSLR을 든 관광객들은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도 없고 태블릿도 없었다. 폰카(피쳐폰)를 들고 사진 찍는 사람이 멀리서 보일 뿐이다. 광장 뒤에 있는 관광객들은 교황의 즉위 연설을 확인할 수가 없다. 단지 현장에 있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2013년에는 교황의 즉위 연설을 트위터로 확인하고 심지어 교황의 첫 트윗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스마트폰으로 생중계되는 영상과 실제 현장을 비교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려 스스로 미디어가 됐다. 불과 8년만에 바뀐 상황에 다음 교황이 선출될 수십년(?) 후에는 바티칸 성당 광장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다.
2005년과 2013년 로마 교황 선출 현장에서 AP 사진 기자가 찍은 두 장의 사진은 바뀐 세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뀐 세상이란 모두가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거나 현장에서 즉시 사진을 촬영하거나 트위터를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는 ‘연결되고(Connected) 공유 가능한(Sharable)’ 세상이 기본이고 정상적이며 연결되지 않고(Disconnected) 공유할 수 없는(Unsharable) 세상은 기본이 아니고 비정상적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정상, 비정상이란 옳고, 그름(Right or Wrong)의 이슈가 아니다. 자연스럽거나(Normal) 부자연스럽다(Abnormal)는 뜻이다.
세상은 바뀌었다. 새로운 기준(New Normal)은 연결된 세상이다. 사물, 장소 등은 연결성을 만나 새롭게 정의될 것이다. 항상 인터넷에 연결돼 있어야 자연스럽고 편하게 느껴지며 인터넷에 연결되지 못하면 불편하고 불안하다. 정신 이상이나 인터넷에 중독되서가 아니다. 인터넷에 항상 연결되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지 않은 것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인터넷이 확산되기 전까지 ‘인터넷 쇼핑’이 정상적인 구매 행위가 아니라 매장에서 직접 보고 직접 결제하는 것이 정상적이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 이제는 ‘기준’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이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 되야 하고 연결되야 한다. 현재 70억 인구 중 20억 인구가 인터넷에 연결 돼 있지만 2017년까지 10~15억 인구가 인터넷에 새로 접속, 전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35억 인구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에 연결되는 인구가 점차 늘어날 뿐만 아니라 자동차, 시계, 안경 등 사물도 연결되시 시작했다(Internet of Things). 2015년에는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한 인터넷 접속이 고정형 PC를 통한 인터넷 접속을 초월하게 되고 2020년에는 약 500억개의 인터넷에 연결된 디바이스가 세상에 퍼져 있을 것이다. 세계는 연결성을 기준으로 재정의되기 시작했다.
New Normal : Connected
‘연결성(Connectivity)’은 인류의 삶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정부, 시민사회, 여행, 교통, 의료, 미디어, 스포츠 등은 빠르게 재정의될 것이다.
예를들어 ‘좋은 공항’의 기준은 수하물이 빨리 정확히 나오거나 입국 출국 심사를 빨리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수하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무료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거나 방전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충전이 쉽도록 곳곳에 충전 단자를 배치한 것으로 바뀔 것이다. 여행객들은 혼자 왔건 단체로 왔건 낯선 나라에 입국해서 가장 먼저 구글 지도나 카카오톡이 연결되야 하고 공항에서 호텔까지 거리, 시간과 가장빨리 갈 수 있는 방법, 가까운 식당 등을 스마트폰을 통해 찾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식당’의 기준은 맛집이거나 지하철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라 스마트폰 지도로 찾기 쉬운 곳이나 옐프(Yelp)나 자갓(Zagat) 평판이 좋다거나 복잡한 메뉴판 대신 사진으로 편리하게 음식을 고를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맛집 추천은 복잡한 인터넷 검색 결과 보다 아직까지 ‘입 소문’이 좌우하지만 데이터가 축적 된 옐프와 자갓은 입소문보다 더 신뢰있는 매체가 되고 있다.
태풍(허리케인), 지진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를 당한 후 정부나 시민단체가 가장 먼저 복구해야할 것은 이제 도로가 아니라 이동통신 기지국일 것이다.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중계할 수 있도록 해 구호를 상황에 맞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면이 필요한 곳에서는 라면을, 생수가 필요한 곳에는 생수를 공급해야 한다. 공평부당하게 라면과 생수를 일정 비율로 공급하는 것이 구호 작업이 아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곳에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으로 연결되면 상황에 맞게 다르게 구호 작업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콘텐츠도 ‘연결성’에 따라 기준이 바뀔 것이다. 책이나 신문이 그렇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등장으로 전자책(e-book)이나 모바일 미디어가 나와서 종이 책이나 신문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종이책이나 신문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신문이나 종이 책은 ‘비연결 미디어(Disconnected Media)로 재정의될 것이다. 현존하는 전자책은 반연결 미디어(Half Connected Media)다. 전자책은 아직 종이책을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옮겨놨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저자가 종이 책 개정판을 내야 전자책도 업데이트 된다.
하지만 연결 미디어에서는 저자가 상황에 따라 내용을 업데이트하면 이 것이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기자가 기사를 수정하거나 후속 보도를 하게 되면 독자들은 해당 기사에서 업데이트된 기사를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기사에 소스가 되는 원문을 링크해야 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이 기사와 콘텐츠를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것은 연결성이 가져오는 미디어의 혁명적 변화다. 미디어는 앞으로 연결성에 따라 ‘연결 미디어’와 ‘비연결 미디어’ ‘반연결 미디어’로 재정의될 것이다.
B.I 그리고 A.I
‘연결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아주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회사, 조직, 단체, 개인 등 예외는 없다. 모두 바뀐다.
이 같은 근본적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2007년 아이폰의 등장이었다. 제품(기술 또는 서비스)의 등장이 인류의 삶을 바꿔놓는다? 그렇다. 역사가들은 20세기 후반 발명된 인터넷과 21세기 초입인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이 인류 문명사에 큰 전환점을 줬다고 평가할 것이다. 후대 역사가들은 21세기에 대해 기술하면서 B.I(Before iphone)과 A.I(After iphone) 시대로 구분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B.C(Before Christ)와 그 이후로 구분되는 것과 비슷하다면 너무 거창할 것일까.
21세기 들어 10여년간 인류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은 9.11 테러도 아니고 글로벌 금융위기도 아니고 버락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도 아니다.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의 등장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동통신과 인터넷을 결합시켜 휴대폰(Mobile Phone)을 재정의, 극적인 방법으로 아이폰을 세계에 소개했고 이후 1인 1인터넷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으며 이는 연결된 세상을 가져와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19세기 후반 처음으로 전화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인류에 많은 스토리를 남겼다. 전화의 발명은 인류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을 바꿨다. 이후 20세기 휴대폰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7년 스티브 잡스에 의해 선보인 휴대폰 ‘아이폰’은 역사적인 제품으로 기억된다. 전화의 등장만큼 휴대폰이 인터넷을 만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아이폰이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18세기 산업혁명을 가져온 제임스 와트도 증기기관을 처음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재정의’한 기술자였다는 것이다. 증기의 열 에너지를 기계 동력으로 바꿔주는 증기 기관을 구상한 것은 제임스 와트가 처음이 아니다. 문제는 이 아이디어에 기술적 효율성을 높여서 일반화하고 상용화하는 것이었는데 이 것을 해결한 사람이 제임스 와트다. 그는 증기기관의 발명자가 아니다. 기존 증기 기관의 단점을 개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와트식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특허를 취득했다. 증기기관 자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재정의, 분리 응축기를 독자적으로 개발 증기 기관에 일대 혁신을 가져옴으로써 산업화의 동력을 만드는데 기틀을 다졌다. 제임스 와트는 후대 역사가에 의해 증기 기관의 발명자, 그리고 산업혁명의 기틀을 놓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포스트 산업화 시대
18세기 산업혁명, 20세기 초반 핸리 포드에 의한 대량생산(Mass Production) 체제 도입은 산업화의 꽃을 피웠으며 여기에 세계화가 더해 전 세계적인 산업화 시대를 맞았다. 지금 인류의 삶도 결국 산업화 시대의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스탠포드 대학 커뮤니케이션 학과 프레드 터너(Fred Turner)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 사회(Digital Media in Society) 수업에서 산업화와 포스트 산업화 시대를 아래와 같이 구분했다.
산업화 시대에 대한 규정은 다양하게 할 수 있고 이견도 있을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대량 생산 대량 소비’ ‘공장식(컨베이어벨트식) 생산방식’과 명령과 통제(Command and Control)식 의사결정 방식을 말한다.
자동차가 대표적인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며 TV, 냉장고 등 가전 제품이나 가구, 장난감 등 모든 제품이 산업화 시대, 컨베이어벨트식 방식으로 생산된다.
‘산업화 시대’라는 것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만 의미하지 않는다. 생산하는 재화가 자동차, 휴대폰, TV 등 대량 생산, 대량 소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 ‘지식 산업(콘텐츠, 미디어 등)’에 해당하더라도 생산 방식이 공장식이거나 지휘통제식 의사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이 것도 ‘산업화 시대’의 결과물이다.
예를들어 ‘뉴스 콘텐츠’가 그렇다. 뉴스 콘텐츠는 대표적인 정보, 지식 재화이므로 포스트 산업화 시대의 총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매일 새롭게 생산되는 뉴스보다 가치있는 정보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미국, 일본, 영국 등 뉴스를 생산하는 신문사나 방송사의 방식도 컨베이어벨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 지휘 통제식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사를 쓰는 기자, 편집을 하는 기자, 제목, 교열 등 신문 제작 시스템은 ‘가상 컨베이어벨트(Virtual Conveyer-belt) ‘에서 제작된다. 기사를 쓰는 기자는 편집에 관여해서는 안되고 제목과 교열 작업도 분업화, 전문화 돼 있고 칸막이가 높아서 서로 교류하며 제작하기 힘든 구조가 형성 돼 있다. 각 기자들은 뉴스룸이라는 가상 컨베이어벨트에서 뉴스를 만드는 공장 노동자에 불과한 셈이다.
기자들은 뉴스라는 창의적인 지식 상품을 만들지만 대량 생산 체제(가상 컨베이어벨트)에서 대량 소비(신문, 방송)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며 무엇보다 가장 치열한 지휘통제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의 산물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 산업화 시대는 세계적으로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과 인터넷 네트워크의 확산으로 만들어지게 됐다.
아이폰 등장 이후(A.I ) 포스트 산업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아이폰이 상징하는 초연결 기술(Hyper-connected Technology)의 등장은 산업화 시대에서 포스트 산업화 시대로 완전히 옮겨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예상된다(맥킨지에서는 이를 ‘디지털 전환’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 전체가 이동하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사람들간 교류를 가능하게 했고 이는 힘의 균형이 소수에서 다수로 옮겨지게 된 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는 정보 독점을 막을 뿐만 아니라 정보 유통의 민주화를 이뤄냈으며 절대 권력의 힘이 약해지고 생산도 대량 맞춤 생산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아이폰을 포함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20억 인구가 서로 연결된 디바이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컨베이어 벨트식 대량 생산이 상징하는 산업화의 특징이 한번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듯 산업화 시대에서 포스트 산업화로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으며 점차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 : 손재권
출처 : http://goo.gl/AU8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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