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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디에나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동네 아파트 전단지에도 ‘생활 네트워크, 교통 네트워크’라는 말을 쓸 정도다. 지금을 네트워크 사회(Network society)라고도 한다. 인터넷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졌고 우리는 항상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다. 소셜 네트워크 없이는 시장도 마케팅도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네트워크란 도대체 무엇인가? 단순히 인터넷 인프라이고 첨단이고 사회연결망인가? 네트워크의 무엇이 지금 문화를, 관계를, 시장을 바꾸고 있는가? 인터넷 시장을 알고 싶다면, SNS와 빅데이터에 길을 묻고 싶다면, 네트워크가 무엇인지부터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이번 글에서는 네트워크의 4가지 속성을 알아본다. 네트워크의 개념은 뜻밖에도 의학(medicine)에서 출발했다[Armand Mattelart, L’invention de la communication, Paris, 1997, p.30]. 그 전까지는 그물모양이나 레이스장식(여자들의 얹은 머리에 쓰는 그물로 된 장식, 16세기 불어사전) 등에 불과했다. 그러나 17세기에 ‘피부조직’을 설명하기 위해 의학에서 네트워크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근대적인 개념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육체(body)’와 ‘유기체(organism)’의 의미가 부여되었고 그 후에는 혈액순환의 메커니즘에 비유되면서 네트워크는 ‘순환(circulation)’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Pierre Musso, Télécommunications et philosophie des réseaux. PUF, 1998, p.31-33].
의학에 기반한 네트워크는 이 때부터 “형태를 형성하고, 확장하고 확대되며, 보이지 않는 (imperceptible), 수많은 (섬유)조직으로 구성된” 개체로 인식되었다고 하겠다[Denis Diderot, Oeuvres philosophiques, p. 314-315, Garnier, Paris, 1980]. 여기에 산업혁명을 맞아 네트워크의 개념이 크게 발전하면서 지금 인터넷 시장에서의 네트워크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개념과 현상을 종합해보면 네트워크는 크게 4가지 속성을 지닌다. 긴 역사의 나열은 생략하고 시사점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네트워크는 연결이 수단이고 목적이다
- 둘째, 네트워크는 열려있기 때문에 접목과 확장이 쉽다
- 셋째, 네트워크는 사회적이기 때문에 사용자 관계가 성적표이다
- 넷째, 네트워크는 유기적이기 때문에 생명체의 규칙을 따른다
네트워크는 연결이다 (Network is connection)
연결은 고립과 단절의 반댓말이다. 연결이 없으면 네트워크란 존재할 수가 없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것을 연결하고 가깝게 만드는 것이 네트워크이다. 실제로 네트워크에 연결의 개념이 부여된 것은 18세기 말 ‘교통혁명’부터이다[Pierre Musso, op.cit,. 1998].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에 철도가 건설되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인프라가 구축된다. 지금의 네트워크가 가지는 기능적 의미, 즉 ‘연결(link)과 인접성(proximity)의 개념은 바로 여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 사람이나 제품의 물리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수도, 가스, 전기 공급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원의 네트워크가 도시 전역에 만들어졌고 연결성은 네트워크의 핵심적인 속성이 된다.
페이스북의 CEO 주커버그는 ‘연결이 인간의 권리’라고 주장한다(물론 인터넷 연결에 국한된 언급이지만). 지금 페이스북의 가치를 만드는 것은 네트워크의 규모이다. 규모는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많이 연결되었는지, 그리고 서로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연결(공유, 댓글, 좋아요)하고 상호작용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네트워크는 채팅창의 버디리스트나 핸드폰의 주소록과 다르다. 각자의 친구는 또 누군가의 친구이며 그 누군가는 또 다른 사람의 친구이다. 네트워크는 이렇게 노드들이 연결된 관계(link)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연결 관점에서 보면 페이스북은 추천을 통해 친구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컨텍스트를, 뉴스피드와 좋아요 등을 통해 친구의 콘텐츠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컨텍스트를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하겠다.
구글의 핵심 가치도 연결이다. 구글의 검색엔진 페이지랭크는 30조가 넘는 웹페이지를 연결하고 있다[Sara Perez, “Google Explains How Search Works, Complete With Live Spam Slideshow,” TechCrunch, March 1, 2013]. 색인하는 문서의 수가 아니라 ‘연결된 대상’이 30조라는 말이다. 웹페이지간의 연결된 관계(인링크와 아웃링크 관계)에 기반하여 어떤 문서가 더 중요한지 알아내는 원리가 지금의 구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네트워크는 열려있다 (Network is open)
연결은 하나의 네트워크에 국한되지 않는다. 네트워크는 열려있다. 다른 종류의 네트워크들이 쉽게 결합하기도 하고 다른 종류의 노드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도 있다. 네트워크는 고정된 시작점이나 끝점이 없다. 특히 사람들의 참여가 노드와 링크를 구성하는 네트워크에서는 사람들이 움직이는대로 여러 종류의 네트워크가 쉽게 연결되고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다만,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네트워크의 열린 속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페이스북은 2006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API를 오픈했다. 경쟁 서비스라고 손사래를 치던 회사들도 지금은 모두 페이스북 계정으로 로그인이 되도록 하고 페이스북 친구목록을 가져다 쓴다. 페이스북은 네트워크를 개방하여 자사의 범위가 확장되는 결과를 얻었다. 페이스북은 네트워크가 서로 연결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래 스키마는 서로 다른 종류의 네트워크들이 사용자의 활동에 따라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용자 M1이 만든 콘텐츠 C1은 M2의 블로그에 인용(C2)되고 이것은 다시 페이스북 사용자들에게 공유되거나 사용자 M3를 통해 트위터로 보내질 수 있다. 사용자의 동선(활동)은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 다른 종류의 네트워크를 쉽게 접목시킨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이 연결된(매개된)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매개(Mediation)는 ‘매개의 4가지 유형: 창조, 재창조, 복제, 소비‘에서 정리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제공하는 SNS에서 동영상 서비스를 준비한다고 가정하자. 쉽게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는 기능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이 때 여러분은 유튜브 동영상을 이용할 것인가, 막을 것인가? 유튜브는 여러분의 경쟁사인가, 협력사인가? 만약 여러분의 비즈니스가 ‘네트워크 사업’이라고 판단된다면 사용자들이 최대한 쉽고 편리하게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경쟁사라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 네트워크 비즈니스이다.
네트워크의 개방성은 선택이 아니라 원래 주어진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는 순간 비즈니스 전략은 모순이 되고 네트워크는 진화를 멈추게 된다. 이것은 필자가 몸담았던 회사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고 이것을 체득하는 데에 수년이 걸렸다. 사용자를 서비스 안에 가두려고 하면 결과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사업자 자신이다.
네트워크는 사회적이다 (Network is social)
연결은 먼 것도 가깝게 만들고 가까운 것도 멀게 만든다. 지구는 좁아졌고 이웃은 멀어졌다. 네트워크는 필연적으로 사회관계에 영향을 미친다[Michel Serres, Atlas, Paris, 1994, p.200-202]. 특히 18세기의 통신혁명은 네트워크 개념을 ‘사회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때부터 네트워크는 최초로 ‘원거리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지칭하게 된다[Armand Mattelart, op.cit., p. 64]. 첫 번째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인 우체국을 비롯하여 전화 등 텔레커뮤니케이션은 시공간의 제약을 해체하고 본격적으로 사회관계를 재구성하는 주체가 되었다.
이와 같이 철도, 전기, 통신 혁명과 함께 발전한 네트워크 개념은 태생적으로 시간과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그동안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새로운 기술의 출현과 네트워크 구축으로 가능해졌다. 사람들은 보다 쉽게 여러 도시를 여행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유통시장이 생성되고 문화는 발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시간을 앞당기고 공간을 확장시키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열었다. 네트워크가 오늘날 미래지향적 가치관을 포함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페이스북의 주커버그는 ‘구글은 소셜을 모른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소셜 기능 몇개 추가한다고 SNS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구글이나 주커버그가 소셜을 아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다만 SNS는 말 그대로 네트워크 서비스이고 네트워크는 관계를 만들어야 살아 남고 성장한다. 싸이월드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10억 사용자의 소통도구가 된 페이스북은 분명히 우리의 사회관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대화하고 뉴스를 보고 일을 하고 물건을 사는 방법을 바꾸고 있다. 사회관계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이 도시를 만들고 계급을 바꾼 것도 사회관계의 변화지만 싸이월드가 디지털 카메라를 유행시키고 식당 풍경을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면 구글플러스가 페이스북을 대체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구글 플러스의 네트워크가 지금 여러분의 사회관계를 바꾸고 있는지 물어보면 된다. 사회관계는 네트워크를 진단하는 척도이다. 네트워크가 성장하려면 정보를 얻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회관계를, 상호작용하는 습관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구글플러스는 현재 1억3천5백만명의 active user를 갖고 있는 서비스지만 시간이 훨씬 더 필요해보인다.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은 가치를 공유하고자 한다. 오늘 처음 뒤집기에 성공한 아기 동영상도 자랑하고 어제 본 영화도 얘기하고 요즘 빠져있는 드라마 OST도 나누고 싶다. 일상이든 정보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조각들이 모이면 그 네트워크가 지향하는 사회 관계가 정의되고 네트워크가 함께 추구하는 가치가 된다. 그것을 성장시키는 네트워크가 시장을 이긴다. 사용자가 공유하는 가치가 도태될 때 사회관계도 도태되고 네트워크도 도태한다.
네트워크는 유기적이다 (Network is organic)
네트워크가 사업자의 예측대로 또박또박 성장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리적 재화와 달리 인터넷 서비스는 출시된 이후부터 진화를 시작한다. 예측불허다. 인스타그램은 위치공유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사진공유 서비스로 페이스북에 인수되었다. 싸이월드도 게시판, 커뮤니티, 포럼 등 엄청나게 많은 기능을 가진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사진첩 중심의 미니홈피가 핵심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루폰은 투자모금 사이트로 시작해서 온라인 공동구매 사이트로 진화했다. 또 페이스북은 교내 얼짱들의 페이스매쉬(‘facemash’)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지인들의 연락처이고 업무공간이고 공개된 일기장이다. 자신들이 만든 서비스인데도 어떻게 진화할지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트워크 서비스는 왜 예측이 어려운가?
앞서 네트워크의 개념이 의학에서 출발했다고 언급한 것처럼 네트워크는 구성요소인 노드 하나하나가 생명력을 지닌 세포,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여러 기능들의 작용으로 형태변이를 계속하는 네트워크는 살아있다[Michel Feneyrol, Les Télécommunications: réalités et virtualités. Un avenir pour le 21ème siècle, Paris, 1996, p. 68]. 프랑스의 신경생물학자 Jean-Pierre Changeux 또한 신경세포와 조직을 텔레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했다[Jean-Pierre Changeux, L’homme neuronal, Paris, 1983. Cited by Pierre Musso, Critique des réseaux, Paris, 2003, P. 271]. 유기체의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 시장에서 사용자는 세포에 비유될 수 있고 사업자가 제공한 서비스는 세포가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칙일 뿐이다. 세포가 모여서 서로 상호작용하고 성장하고 형태변이하고 도태하는 일련의 과정이 곧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이다. 여러분이 만드는 콘텐츠와 댓글과 좋아요, 친구신청이 네트워크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의 움직임은 네트워크의 진화 방향을 결정한다. 사업자에게는 사용자가 ‘왜’ ‘무엇을’ 위해 서비스를 사용하는지 알려주는 힌트들이다. 네트워크를 성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이 사용동기를 읽고(해석하고)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 뿐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사업방향을 수정(‘pivoting’)하고 충분히 개선시킬만큼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하면서 성장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페이스북도 세포들이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언제고 형태가 바뀌고 늙거나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전한 개체라는 뜻도 된다.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만물이 생성, 진화, 발전, 쇠퇴, 소멸의 라이프사이클을 지닌다. 네트워크 서비스는 이 성장 사이클을 최대한 연장해야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생명체이다.
네트워크 시장에서 비즈니스의 기준이 바뀐다
지금까지 네트워크의 4가지 속성을 살펴보았다. 태생적으로 네트워크는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시스템임과 동시에 원거리를 ‘연결’하고 시공간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성장해왔다.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관과 사회 문화적 상상(imaginary)을, 새로운 시장을 제공해왔고 지금은 네트워크의 본래 속성들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그렇다면 네트워크는 단순한 기술도, 사회연결망도 아니다.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다면성을 지닌 생명체이다. 그러니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한 네트워크가 무엇이 될지 미리 답을 낼 수는 없다. 다만 네트워크의 속성을 중심으로 잘못된 질문(과제설정)을 수정할 수는 있다.
먼저 전통적 비즈니스 관점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던지는 질문들이다:
- 어떻게 1등을 (유지)할 것인가?
- 고객을 어떻게 Lock-in 시킬 것인가?
- 무엇을 얼마에 팔 것인가?
- 회원수가 몇 명인가?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위의 질문들은 적절치 않다. 성장을 멈추면 죽는 시장에서 경쟁사가 서로 기준이 될 수 없고 (같이 죽는다), 개방된 환경에서 고객을 억지로 가둘 수 없다. 고객이 매개자(곧 마케터, 영업사원, 통신원, 생산자)이니 핵심은 어떤 연결가치를 제공하는가에 있다. 결론적으로 네트워크 속성에 기반하여 질문을 아래와 같이 수정하면서 포스트를 마친다:
- 지금 이순간 성장을 멈추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 고객(콘텐츠)이(가) 지금 고립되어 있지는 않은가?
- 무엇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아마존의 연결 비즈니스)
-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어떤 매개활동을 하고 있는가?
다음 포스트에서는 ‘네트워크의 이중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네트워크의 다면성은 네트워크를 어느 각도, 어느 시점, 어느 상황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만든다. 착시현상 때문에 네트워크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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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가닉 미디어랩
출처 : http://goo.gl/tIrO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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