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재취업을 했다. (아직 최종 결정은 내리지 않은 상태이지만…)
아이를 낳고 2년 가량 쉬다가 재취업을 하는 것이었다. 여간 걱정이 많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옵션을 두군데 두고 최종 고민하고 있다.
출산 후 재취업을 하는 여성은 그 이전과는 커리어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물론 아기이다. 재취업 과정이 끝남과 동시에, 육아에 대한 고민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지난 며칠간 보모 아줌마와 어린이집 등 앞으로 와이프가 출근하게 되면 당장 닥칠 현실적인 걱정들 때문에 바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가지 느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남성이 여성보다 자녀에 대한 애정이 덜하다고는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 자녀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여성이 맞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남성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꼼꼼함과 세심함이 느껴지고, 아이의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마치 자신의 몸안에 일어나는 일 처럼 신경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예컨대 어린이집 식단에서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얼마의 비율로 나오는지, 어린이집 장난감 중에서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어디 얼만큼 있었는지, 어린이집 원장님께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밤새 적어 가는 일 등은 남성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모성애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이를 두고 회사를 나갈 것에 대한 이야기만 꺼내도 와이프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직 첫 출근은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 와이프 맘을 잘 알고, 또 한국의 직장인들이 어떤 상황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사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육아복지제도라는 것이 누구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재취업 과정에서 놀라움과 절망과 희망을 반복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고, 좋은 보모 아줌마는 하늘이 내려준다는 말이 ‘은유’가 아닌 ‘현실’인 상황에서 정말 말로만 듣던 막막함을 체험하고 있는 하루하루이다. 도대체 여성복지, 육아 및 양육에 대한 부담을 국가가 지겠다고 말했던 역대 대통령들은 뭘 했던 것인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도 이런 문제가 내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기 전까지는 나몰라라 했던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고3 수험 기간이 끝나면 수능에 대한 뉴스가 남의 얘기처럼 들리듯이 우리 아이도 좀 크고 나면 이 모든 걱정은 내 걱정이 아닌듯 느껴질것 같기도 하다.
와이프의 재취업 과정을 통해서 얻은 몇 가지 생각…
1.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기업들이 외국계 기업들에 비해서 훨씬 더 육아에 대해서 supportive하다는 점이었다. 90년대 후반 대학에 입학하고, 2000년대 초반 사회에 쏟아져 나온 우리 부부에게는 이런 사실이 조금은 흥미롭다. 물론 주변에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우리 부부 모두 첫 직장으로 외국계 회사를 택했던 이유는 단지 외국계가 cool해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커리어를 설계하고, 복지나 평등이라는 측면에서 더 앞서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의외로 한국계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복지에 대한 의지가 과거 10년간 많이 바뀐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내가 말하는 한국계 기업들도 크기가 커질수록, 그리고 노조가 있을 수록 직원들의 육아와 출산에 대한 제도가 더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사내에 탁아시설이 있어서 점심시간에라도 잠깐 내려가서 아기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부모들은 안다.
2.
반면 외국계 기업들은 출산과 육아를 ‘기업’이 챙겨야 할 영역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특히 미국회사들 말이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package에 있어서 가족에 대한 care가 굉장히 드물다. ‘우리가 주는 돈 안에 다 들어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인상마저 들었다. 물론 그네들의 본사에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국 대리점’에서까지 직원들의 자녀를 챙겨줄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나보다. ‘한국 대리점’ 단위로 그럴듯한 복지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가 보다.
3.
결국 기댈 곳은 부모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결국 우리 부부의 결론도 다시 본가, 그러니까 그녀의 시댁으로 들어가서 사는 것이다. 아들을 다 키워 놓으니, 그 아들이 다시 또 자기 아들을 봐 달라면서 들어오는데도 우리 어머님은 싫은 기색하나 없다. 칠순이 넘으신 어머님께 아이를 맡기는 것이 못내 죄송한 마음이지만, 지금으로써는 기댈 곳이 없다. 아마도 part time 보모를 쓰겠지만, 그래도 어머님께서 많이 힘드실것 같아서 걱정이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함께 해 주는 와이프가 고맙다.
최근에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한 어떤 형과 점심을 먹었다. 그 형이 자전거를 타고 미국 사막을 건널 때 즈음, 도대체 자기가 왜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마라톤, 자전거, 수영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느끼는 것이겠지만, 항상 그런 운동을 할 때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다. (나만 그런가?) 그 형의 결론은 가족과 맛있는 아침을 먹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글썽했다.
우리는 가정을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벌써부터 야근이 걱정되고, 혼자 있을 아이가 걱정되고 있는 우리 부부는 세상을 새로 배우는 느낌이다. 좋은 세상, 좋은 사회란 어떤 곳인가? 에 대한 기준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계속 바뀌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곳’인것 같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우리나라, 우리사회에 대해서는 절망감도 크고, 동시에 절박함도 크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그런 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사회에게 하소연 하고 싶은 날들인데, 가을 하늘은 나몰라라 맑기만 하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goo.gl/qe4ls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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