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이스라엘은 전세계적으로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잘 알려져 있다. 인구 800만의 아랍의 적으로 둘러싸인 소국에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처음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나는 이곳의 분위기가 실리콘밸리와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난 이스라엘 스타트업 사람들은 마치 실리콘밸리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았다. 마치 실리콘밸리 사람들을 그대로 이스라엘에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할까. 이후 여러번 이스라엘을 여러번 방문했던 나는 항상 이 작은 나라에서 매력적인 스타트업이 쏟아져나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강한 이유다.
첫번째는 이스라엘이 이민 국가라는 점이다. 이는 전세계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이 현지 IT기업의 핵심 인재층을 채우고 있는 실리콘밸리와 비슷하다. 현 이스라엘 유대인 인구의 30%는 본인이 직접 이민온 1세대이며 나머지도 모두 이민 가정의 2세, 3세다. 특히 구소련 연방에서 이민온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큰 인재풀이 됐다. 이들 중 주로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국어로 배우며 교육 받지만, 집에서는 영어나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부모의 모국어를 사용해 다국어 능통자가 많다. 또 부모의 모국에 친척이 남아있거나, 이중 국적자로서 활발히 교류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이스라엘인들로 스타트업이 구성되면 저절로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좁은 국내 시장이다. 이스라엘의 인구는 2013년 기준으로 800만명 정도다이다. 서울 인구 만큼도 안된다. 그중에서 아랍계 인구를 빼고 나면 히브리어를 쓰는 유대 인구는 6백만 밖에 되지 않는다. 즉, 히브리어로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팔리는 내수시장은 세계시장에 비하면 한 줌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스라엘 기업은 아예 처음부터 글로벌시장을 겨냥하고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차별화된 기술이나 비즈니스모델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다. 큰 내수시장이 있다면 외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모방해서 국내 시장을 겨냥해도 되겠지만 애초부터 미국이나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시장을 겨냥하다 보니 뛰어난 기술이나 제품이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초의 인터넷 전화나 인터넷 메신저는 모두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처음 내놓은 것이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글로벌화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세번째는 전 국민의 높은 수준의 영어 실력과 글로벌한 비즈니스 감각이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평범한 식당의 종업원이나 버스 운전사도 상당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경우가 많아 깜짝 놀라게 된다. 영어가 공용어도 아니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이 히브리어로 이뤄지는데도 그렇다. 히브리어가 영어와 비슷해서 잘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면 “히브리어는 오히려 아랍어와 비슷하며 영어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할까.
해즈오퍼스(Has Offers)라는 미국스타트업의 텔아비브지사를 맡고 있는 아리 아트셜 씨는 미국에서 성장한 뒤 성인이 돼 이스라엘로 건너온 유대인이다. 그래서 히브리어보다 영어가 휠씬 편하다. 그는 이스라엘인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을 미국 프로그램을 더빙하지 않고 항상 자막을 달아서 방영하는 이스라엘 TV의 영향으로 해석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인펠드’ 같은 미국의 인기 드라마를 어릴 때부터 원어로 즐기면서 자랐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TV 방송을 살펴보니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까지 자막으로 방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그는 “많은 이스라엘 회사들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해 사내 문서나 이메일은 영어로 쓰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나처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일하기가 아주 편하다”고 말했다.
네번째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활발한 창업 생태계다. 1998년 세계 최초의 인터넷 메신저 ICQ를 개발한 이스라엘 스타트업 미라빌리스가 미국의 AOL에 2억8700만달러에 매각됐다. 그런데 돈을 번 창업자들은 이후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재창업에 나서고 있다.
이런 ‘연쇄 창업자’들이 만든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이 매년 미국의 글로벌 IT기업에 매각되거나 나스닥에 상장된다. 그렇게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쏟아져 나오고, 그들이 똑똑한 인재들을 모아 다시 기업을 만들어 성공시키면서 스타트업 커뮤니티에 돈도 모이고 인재도 모이게 된 것이다. 이런 선순환이 요즈마펀드 등 이스라엘 정부의 스타트업 진흥정책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스타트업이 가득한 ‘창업 국가’가 됐다.
구글 텔아비브캠퍼스에서 만난 한 구글 직원은 “텔아비브에서 돌을 던지면 90%는 창업자에게 맞는다는 농담이 있다”며 “구글을 퇴사하는 직원들도 대기업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말할 정도다.
다섯번째는 전세계의 끈끈한 유대인 네트워크의 힘이다. 내가 같이 일해 본 이스라엘인들은 내 예상보다 휠씬 긴밀하게 같은 유대인들끼리 연결되어 있었고, 수시로 서로를 돕고 소개해 주고 있었다. 종교와 전통, 애국심으로 묶인 전세계 유대인들의 동질감이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성공한 이스라엘 창업자들은 뉴욕과 실리콘밸리를 분주하게 오가며 현지의 유대인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지사를 설립하고 투자를 받는 것이 일종의 공식으로 되어 있었다. 또 IT 업계에서 성공한 미국의 유대계 미국인들도 분주하게 이스라엘을 드나들며 투자나 협력 대상을 찾는 경우가 많다.
여섯번째는 독특한 군대 경험이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3년간 의무 군 복무를 해야 한다. 대개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군대를 간다. 군대에서 보낸 시간은 귀중한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과 달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군대 경험에 대해서 긍정적이다. 어린 나이에 위기 대처 능력과 리더십을 배우며, 인간으로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였으며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의 아이디어를 군대 경험에서 얻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눈의 동공과 안면 움직임으로 스마트폰과 타블렛의 소프트웨어를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유무브(Umoove)라는 예루살렘스타트업의 이츠 켐핀스키 CEO는 “군대에 있을때 이런 첨단기술을 군사용으로 개발하는 것을 보고 민간에 적용해볼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런 친구들에게 군대에서 정확히 뭘했었냐고 물으면 “보안 상 말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대개는 이스라엘 보안부대에 근무했던 경우다. 적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 군사력을 만회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대(IDF)는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편이고 거기서 배울 기회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내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사람들에게 느낀 가장 큰 강점은 따로 있었다. 위험을 수반하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헝그리정신이었다.
영어 교정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진저소프트웨어의 마케팅 최고책임자 데이빗 노이 씨는 내게 “이스라엘인들은 기존의 틀을 부수고 바꿔보려는 습성이 있다”며 “그런 마음에서 그까짓 것 한번 해보지 뭐”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스라엘인들의 도전 의식이 젊은 인재들로 하여금 변호사나 의사가 되거나 대기업에 가기 보다 스타트업에 쏠리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신 이스라엘인들은 스타트업을 크게 키우지를(Scale up) 못한다”고 말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처럼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약하고 중간에 매각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에서는 거꾸로 삼성, LG, 현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있는 한국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역시 모든 것을 다 갖추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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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8일자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기고했던 내용입니다. 위에 진저소프트웨어의 데이빗 노이(애칭 두두)와 했던 이야기를 ‘보스와 부하가 평등하게 토론하는 이스라엘 조직문화’라는 글로 쓰기도 했습니다.
글 : 에스티마
출처 : http://estima.wordpress.com/2014/03/22/israelistart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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