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정욱입니다. 저는 지난해 11월부터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미래창조과학부와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 인터넷회사들이 힘을 합쳐 함께 만든 민관협력네트워크입니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더욱 활발하게 만들고 우리 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돕는 미션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역동적인 인터넷스타트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도움이 될만한 회사끼리 연결해주는 일을 워낙 좋아했습니다. 열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창업자분들을 만나면 그들의 창의적인 기운이 제게까지 전염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직업으로서 국내외 스타트업계분들을 마음껏 만나게 되는 일을 하게 돼서 무척 즐겁습니다. 지난 8개월동안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 벤처투자자들은 물론 세계각국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스타트업 관계자분들을 만났습니다. 또 영국, 이스라엘, 실리콘밸리, 싱가폴, 일본 등을 방문하면서 현지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둘러볼 기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말 전세계적으로 ‘스타트업 폭발시대’를 맞이하게 됐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각국의 정부관계자들은 모두 신경제를 이끌 성장동력으로 스타트업이 가진 파괴력에 주목하고 자국에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계각지의 똑똑한 젊은이들은 스타트업을 ‘쿨(Cool)’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창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세계적인 공룡기업으로 단시간에 성장한 실리콘밸리의 구글, 페이스북 같은 업체들은 실력 있는 스타트업들을 거액에 사들이면서 창업자들에게 대박 신화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월 ‘캄브리안 모우먼트’(Cambrian Moment)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내보냈습니다. 5억4천만년전에 지구상에 캄브리아기의 폭발이 일어나 다양한 생명체가 급속히 증가했던 것처럼 지금 전세계에 스타트업들이 급속히 증가해 산업 전체를 재편하고 있으며 기업의 개념도 바꾸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 뿐만 아니라, 런던, 싱가폴은 물론 중동의 암만에까지 벤처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수 많은 스타트업들의 보금자리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스타트업 폭발시대.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제가 지난 8개월간 다녀본 세계 각국 스타트업 현장의 짤막하고 (주관적인) 인상기를 공유합니다.
영국
영국은 런던의 동쪽지역인 이스트런던을 전략적으로 ‘테크시티’(Tech City)라고 이름짓고 유럽의 스타트업 허브로 집중육성하고 있습니다. 원래 옛날 공장이나 창고건물로 가득차 있어 런던 중심지역에 비해 그다지 발전이 없던 지역인데요. 2008년부터 10여개의 테크기업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2010년 데이빗 카메론총리가 이 지역을 테크허브로 키우겠다고 천명하면서부터 스타트업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국투자청에 따르면 현재 이 지역에는 1,300여개의 스타트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11월 제가 이곳에 갔을 때는 쇼디치에 위치한 ‘캠퍼스런던’을 방문했습니다. 낡은 6층건물에 자리잡은 이 구글이 만든 스타트업의 산실에서는 각종 스타트업 관련 모임과 교육이벤트가 상시 열리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이곳을 ‘유럽진출의 전진기지’로서 활용하라고 세계각국의 창업자들에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일단 영어가 통하고 금융의 중심지인데다 유럽의 관문이라는 설명이지요. 실제로 프랑스인 등 많은 유럽본토인들이 이곳에 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온 스타트업팀이나 창업자는 찾기가 힘들었고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스타트업은 별로 없다는 것이 약점인 것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이제는 인구 1인당 스타트업 숫자가 가장 많은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서 전세계에 알려진 이스라엘에는 상업도시인 텔아비브를 중심으로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직선적이고 거리낌없이 질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인들의 기질에 도전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스타트업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느끼기에 가장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스타트업 문화를 가진 곳이 이스라엘입니다.
전세계의 유대인들이 이민 와서 만들어진 나라답게 이스라엘 스타트업 멤버들의 면면도 다국적입니다. 미국출신, 러시아출신, 아르헨티나출신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유대인들이 팀을 이루기 때문에 사고 자체가 처음부터 글로벌합니다. 인구가 겨우 8백만밖에 안 되는 소국이기 때문에 국내시장은 모두 안중에도 없고 미국이나 유럽시장을 공략할 궁리부터 합니다. (참고 포스팅 :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이 강한 이유)
요즘 한국은 ‘창업국가 이스라엘 배우기’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국처럼 잘살고 삼성, 현대 등의 세계적인 대기업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왜 우리를 부러워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커지면 대부분 미국 대기업에 비싼 값으로 팔려나갈 뿐, 글로벌한 브랜드를 가진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오히려 한국을 부러워합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갖춘 사람은 없는 이치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일본
일본은 대기업중심의 보수적인 사회입니다. 토요타, 소니, 히다치, 미츠비시 같은 대기업들이 경제를 이끌어왔고 부모들과 젊은이들은 작은 회사에 가는 것보다 고용이 안정적인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압도적으로 선호했습니다. 명문대를 나와서 벤처기업에 간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본도 최근엔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기 경제불황에 평생고용신화는 사라지고 있으며 인구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일본전자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일본 국내 휴대폰시장도 ‘아이폰공습’으로 초토화되었습니다. 네이버의 일본자회사인 라인주식회사에서 내놓은 라인메신저는 일본인들의 생활패턴을 바꾸면서 일본 IT업계의 지형도도 바꾸고 있습니다. (참고포스팅:일본과 동남아시아를 석권중인 라인메신저의 인기)
이런 파괴적인 디지털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존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의 혁신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이버에이전트, GREE, DENA 등 많은 인터넷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일본최대의 광고대행사 덴츠, TV방송국 후지테레비 등 미디어대기업들도 벤처캐피털자회사를 설립하고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스타트업 투자열기가 후끈해지면서 일본 스타트업의 몸값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뉴스를 개인취향에 맞게 골라서 보여주는 모바일앱을 만드는 ‘구노시(Gunosy)’라는 스타트업은 앱다운로드가 2백만회도 안되는 상태에서 1,000억원 가까운 기업가치로 약 120억원을 투자 받아 큰 화제가 됐을 정도입니다.
일본의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아직 일본에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이 충분히 많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또 “일본 스타트업은 국내시장에 만족할 뿐 해외진출의지가 약해서 아쉽다”는 말도 합니다.
싱가폴
동남아시아의 부강한 도시국가 싱가폴은 강력한 정부주도의 스타트업 지원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실제 싱가폴에서 만난 창업자들은 “정부지원금만 잘 받아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할 정도입니다. 싱가폴은 유럽의 전진기지를 자처하는 런던처럼 ‘동남아시아진출의 전진기지’로 자신을 포장해서 세계각국의 창업가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영어가 잘 통한다는 것도 강점입니다.
싱가폴의 대표적 엑셀러레이터(스타트업 창업보육기관)로 유명한 JFDI에서 만난 한국스타트업창업자 CELUV 이은호대표는 “우리를 포함해서 이곳의 스타트업프로그램에 선발된 10개팀중 단 1팀만 싱가폴현지팀이어서 놀랐다. 그만큼 다국적이며 열린 분위기”라고 제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리콘밸리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IT업계의 메이저리그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 그곳에는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스타트업들이 우글우글합니다. 대부분 대박의 꿈을 안고 전세계에서 몰려든 인재들입니다. 위험을 감수하며 대박의 꿈을 쫓는 이런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는 사실 160년전 골드러시때부터 면면히 흘러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같은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에 수천억원 규모의 대형투자가 이뤄질만큼 돈이 많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고 세계최고의 소프트웨어 개발역량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가득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 그런 최고의 스타트업을 비싼 가격으로 사줄 수 있는 거대 IT기업들이 가득한 곳이기도 합니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IT이야기만 해서 비IT업계인에게는 좀 재미없고 지루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창업을 통해 수백억원이상을 챙긴 자산가들이 발로 채일 정도로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IT에 관한한은 실리콘밸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실리콘밸리의 위상을 위협할 수 있는 곳은 중국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몇 년뒤부터는 실리콘밸리와 중국 IT기업간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것 같습니다.
한국
그럼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떨까요. 한국만큼 정부가 나서서 열심히 창업자들을 지원해주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각 부처, 지자체별로 많은 창업지원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또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디캠프, 마루180, 드림엔터, 미래글로벌창업지원센터같은 창업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속속 생기고 있고 많은 스타트업 관련 모임들이 활발히 열리고 있습니다. 혹자는 너무 과열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창업자들을 지나치게 과보호하지 않고 초기에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이런 열기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많이 시도하면 할수록 성공한 스타트업도 많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국은 위에 소개한 다른 스타트업 생태계처럼 좀 더 국제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인재들도 한국에 많이 와서 한국에서 창업하거나 한국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한국 스타트업들이 자연스럽게 글로벌화해서 세계진출에 성공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해외인재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곳으로 성장하길 기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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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레터로 기고했던 글을 추가 보완해서 블로그에 백업했습니다.
글 : 에스티마
원문 : http://estima.wordpress.com/2014/07/05/startupcam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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