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는 밤낮이 없고, 수시로 행사나 컨퍼런스같은 참여도 해야하고, 외부에서 유치하는 사업이라도 있으면 새벽과 주말을 반납하며 지냈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도 일주일동안 20시간도 자지 못하는 일정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간절해지는 건 ‘사람’. 몇 명만 더 있으면, 잠이라도 잘 텐데…(이게 사는 건가!) 사람을 채용할 재정적 능력이 없으니 힘들단 내색도 못했다. 모두가 겪는다는 이 어려움에 온라인에서 투덜거리기엔 내 자존심이 쓸데없이 쎄다고 할까.
포기하기를 포기하고 버텼다. 1년. 우리 팀에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생겨나고, 팀에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이 생겼다. 도시락 쌀 돈도 없었지만,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은 심정으로 말렸다. 매출과 채무상황을 전부 이야기했고, 줄 수 있는 월급도 없으며, 생활이 편할 거란 보장도 못한다고 했다. 복지같은 건 있지도 않고, 일은 쓸데없이 많을 거라 했다. 몸이 한개라 신경써주지도 못하니 혼자 알아서 해야하고, 책임도 스스로 져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오세요..
그 모든 걸 혼자서 감수한다고 해도, 가족들의 동의 없이는 팀원으로 받아줄 수 없다고 말이다.
저는 스타트업하는 불효자식입니다.
우리나라 명절 전 베스트 기사는 ‘명절증후군’과 ‘명절스트레스’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결혼 언제할래’ ‘취직 언제할래’ 같은 잔소리 때문에 명절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한다. 매년 나오는 기사지만, 매년 읽게되는 기사기도 하다. ‘다들 힘들구나..’ 하는 공감대라도 없으면 명절을 정상적인 멘탈로 보낼 수가 없기 때문일까. 그래도 이런 명절은 설날과 추석, 일년에 두 번 정도 뿐.
그런데 스타트업은 1년 365일이 명절이다. 멀쩡한 회사 때려치고 월급도 안나오는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면, 웬만한 부모님들은 그래 한번 해봐라~ 하신다. 대략 한달, 길어야 3개월정도는 지켜봐주신다. 그런데 밤낮이 뒤바껴 밤은 거르고 잠은 안자고, 눈 풀린채 컴퓨터 앞에서만 일하는 모습을 보는 부모님들은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적당히하고 취직하지?” 이성친구가 있건 없건 결혼에 대한 얘기도 듣겠지. “한참 벌어야될 나이에 쓰고 있니, 어서 돈 모아서 결혼해야지. 엄만 돈 없어”
카톡폰이나 다름없는 스마트폰을 쓰는 부모님은 여전히 ‘앱’이 뭔지, 어디다가, 어떻게 파는지, 사람들이 그런걸 돈주고 사긴 하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하신다. 더군다나 지방에 사셔서 스타트업이란 용어가 낯서니 ‘아무것도 없는 애들한테 뭘 믿고 투자해’라는 식일때도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하다 그만뒀다. 그냥 창업했고, 지금은 못벌어도 돈벌려고 일하고 있고, 로또도 아니니까 열심히 노력하고 잘하는 만큼 성과가 있을거라며. 웃는 소리로 ‘대박나면 차 한대 뽑아줄께’ 하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집 쎈 성씨 셋을 고르라면, 그 중에 하나가 강씨 고집이란 말이 있다. 고집부리는 성격에 하고싶은 것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이라고 쓰고 설상가상이라고 읽는)다. 제발 그만두고 취직하라는 잔소리에 ‘딱 6개월만 더 해볼께’하면서 반항 중이다. 게임 앞에서 1판만! 침대에 파묻혀 5분만! 딱 그 꼴이다. 그런 고집을 보는 부모님은 답답해하실 때도 있고, 속상해 하실 때도 있다. 하지만 웬만큼 넘어져서는 울지도 않을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있기에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 꼭 성공해라’며 밀어주신다. 만약 내 고집이 이정도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꺾여 어느 기업에라도 들어가서 주말이나 기다리며 야근을 하고 있겠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한 설문조사를 종종 본다. 팀원의 역량, 리더십, 사무공간, 자본금 등이 선택지로 주어진다. 팀원의 역량이 부족하면 사람을 구하면되고, 리더십이 부족한건 부딪히며 배우면 된다. 사무 공간은 집이나 까페를 전전해도 되고, 자본금 없으면 회사는 못만들지만, 일은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족들의 동의는? 부모님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아닌지? 와이프가 임신을 준비중인건 아닌지? 엄친아가 대기업에 취직한건 아닌지? 사촌동생이 승진을 한건 아닌지? 가족들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외부의 성질이다. 엄마, 아빠를 바꿀수도 없으며, 잔소리STOP 버튼도 없다. 힘이 아닌 말로, 그것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내 멘탈을 공격한다. 따로 살고 있어서 괜찮다고? 전화기에 뜨는 부모님 이름에 받기를 망설여지고, 오랫만에 집에 가는 것이 3박 4일 극기훈련소에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창업은 생각보다 가족의 동의를 얻기 어렵고, 그들의 이해와 지지가 계속되기는 더 어렵다. 죽음의 계곡이 6개월.. 1년.. 길어질수록 그들의 잔소리는 점점 더 쎄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스타트업의 얼굴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물어본다. 집에선 동의해주셨냐고. 충분히 이해하시냐고.
Let it go, let it go. Turn away and slam the door.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다 잊어, 다 잊어버려. 뒤돌아서서 문을 닫아버려. 그들이 뭐라하던 상관 안할거야. 폭풍아 계속 몰아쳐라. 어차피 추위는 날 괴롭히지 못하니까)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cant get to me at all.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날 구속했던 두려움도 이젠 날 잡을 수가 없네, 내가 뭘 할수 있는지 알아볼거야)
만약, 매일 매일이 명절스트레스 급의 잔소리가 펼쳐질 수 있는 이 모든 걸 각오하고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사돈의 팔촌이 시전하는 어떤 오지랖에도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한다. 흔들리는 걸 지켜 보는 건 더 힘드니까. 스타트업이라면, 그게 나라면, 열번을 찍어도 넘어가지 않아야한다. 매출이 몇 억이니, 연봉이 몇 천이니 하는 것보다 어떤 어려움앞에서도 굳건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신뢰가 간다. 믿음을 준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의지가 약해 내 회사가 흔들리는 바보짓은 말아야지. 그건 누구 탓도 못하니까.
2014년 7월 17일. 500일째 명절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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