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의 입장에서 아이템을 나누면 3가지로 나뉜다. 할 수 있는것, 하고 싶은건, 잘 아는 것. 시장의 입장에서 나누면 역시 3가지로 나뉜다. 지금 잘 팔리는 것, 앞으로 잘 팔릴 것, 언제나 잘 안팔리는 것. 사용자 입장에서 나누면 또 3가지로 나뉜다. 필요한 것, 필요없지만 있으면 좋은 것, 필요도 없고 관심없는 것.
유닛(uKnit)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시장에선 안 팔리는 것, 사용자에겐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는 것이었다. 그걸 왜 이제서야 깨달았을까.
Scene15. 잔잔한 호수
연락처 앱을 3개나 런칭했고, 운영기간으로 따지면 2년을 꽉 채워간다. 매일같이 처리했던 다양한 문의메일이 20-30통에 달했다. 2년간 iOS 4.3 때부터 iOS 7.1까지 지원해왔던 버전만 메이저로 4버전이나 된다. 그만큼 연락처 앱의 이슈와 사용자의 니즈에 관한한 국내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아도 될만큼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생산성 앱은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며, 사용자에겐 딱히 필요도 없고, 특히나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는 더더욱 없는 것도 맞다. 매일 쓰고, 항상 쓰는 전화앱이지만 그래서인지 더더욱 ‘유료’의 지불의사가 없으니 말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막막했다. 아무리 내가 ‘기본 연락처는 불편해요!!’라고 말해도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메아리만 돌아올 뿐, 호수는 여전히 잠잠했다. 호수에 살고 있는 붕어한마리라도 반응을 했을까.
특히나 iCloud, Gmail 주소록 등 거대기업이 클라우드 연락처 시장을 잡고있고, 국내에선 네이버주소록을 무료로 뿌려놓은 바람에 ‘유료연락처’에 대한 인식은 점점 더 나빠져갔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돈을 주고 살 사람은 없었다. 내 아이템을 심사했던 멘토나 VC들조차 ‘무료로 해야되요’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럼 도대체 돈은 언제벌어요? 우린 땅파서 개발해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아직 한번도 내뱉은 적이 없는 걸 보니 잘 참고 있는 것 같기도.
여하튼 그랬다. 아무도 내가 던진 ‘문제의식’에 동조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문제’는 내가 알고있는 플랫폼의 문제였을 뿐, 그들에겐 ‘문제’라고 생각해본적조차 없는 것이었으니.
Scene16. 작은 돌
그렇다면 문제를 만들어 주는 수밖에 없다. 꽤나 오랫동안 모바일 기획자로 일하면서 내가 깨달은건 ‘사람들은 불편함을 모른다’였다. 수동적인 태도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불편함에 적응해버리는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에는 러닝커브(Learning Curve)라고 부르는 것이 작용하는데, 생산성이나 유틸리티쪽 서비스는 특히 러닝커브 자체가 진입장벽이 되기도 한다. 컨텐츠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능을 학습해야 하고, 학습한 것이 습관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사용해야 하는데 사용자들은 학습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 아무리 직관적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UX를 개선해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그냥 좀 불편하고 말래.’에 머물러버리고 만다.
이 러닝커브를 한돋움에 뛰어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나는 불편함을 깨닫게 하는 것을 먼저 한다. 불편함이 견딜만한 불편함인지, 견딜 수 없는 불편함인지를 깨닫고 나면, 러닝커브를 기어오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쉬워지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나를 만났던 사람들은 기억을 하려나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깊어지고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뭘 만들고 있는지 이야기를 하는 차례가 되면 꼭 물어본 질문이 있다. “연락처가 몇개에요? 누가 누군지 전부 기억하세요? 통화내용에 대한 기록은 어떻게 하세요?” 이렇게 보통은 3가지 질문을 던진다. 혹자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테고, 가벼운 설문조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과연 그럴까?
Scene17. 물수제비
물수제비는 호수나 냇가같은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져 노는 놀이다. 얼마나 멀리 나가느냐, 얼마나 많이 튀기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내가 던진 질문은 그들의 ‘익숙함의 관성’이라는 호수에 던지는 ‘조약돌’과 같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두로 꺼낸 질문도 아니며, 설문조사를 위한 질문도 아니다. 음. 글쎄요… 생각을 빠지는 그 순간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불편함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되돌아보게된다. 그거면 된거다. 조약돌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거다. 청자들이 내 질문을 듣고나서 잠시 생각에 빠지는 그 2-3초간. 그 순간에 내가 느끼는 짜릿함은 누구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시간순도 날짜순도 없이 아무렇게나 꾸겨넣어지는 중요한 기록들. 검색도 되지않는 채팅창에 모아두는 기록들. 키워드도 없이 무조건 클라우드에 저장하고보는 기록들. 검색이 되지 않는 연락처의 메모란에 번거로운 편집과정을 거쳐 추가하는 기록들. 그것이 지금은 편해도 나중에 다시 활용하려면 얼마나 귀찮은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행동들이 모조리 불편해지게 되는 것이다.
유닛(uKnit)은 그런 불편함을 찌르는 생산성앱이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행동들 전부를 불편하게 만드는 도구. 통화목록에 메모를 바로 덧붙히는 앱. 그리고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먼저 보여주는 데이터로서의 연락처가 아니라 어떤 통화를 언제 했는지, 누구와 함께 만나 무엇을 했는지의 관계로서의 연락처가 되는 앱. 스티븐잡스가 다시 돌아와도 절대로 추가할리 없는 그런 기능.(생산성은 앱의 무덤이다(1화))
나는 습관의 관성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설문조사를 하고, 페이스북에서 의견을 물었으며,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행동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질문의 목적은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는 것. 그렇게 조금씩 찔러놨던 그들의 불편함은 행동방식을 바꿀 준비를 끝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조금씩 불편함을 깨닫게 하는 단계가 된다. 조약돌은 호수에 빠진지 오래지만, 파동은 남아 멀리멀리 퍼지듯이. 개발이 계획보다 늦어지는 것도 없지않아 있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기다림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그것만으로도 런칭도 전에 바이럴 준비가 끝나있는 셈이기도 하다.
Scene18. 문제와 문제사이
스타트업에서 정석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들 중, ‘문제 정의’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풀려고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해야 하는데, 나의 경우는 반대였다. 차별성있는 기능을 먼저 정의해버리는 바람에 그것들에 열광할 사람들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수익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내 비즈니스 모델이 봉착했던 문제기도했다.
풀지못했던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좋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불편하다고 입을모아 얘기하는 것들을 잘 풀어내는 것만큼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불편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 그 문제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기 때문에 경쟁자들도 순식간에 많아질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함을 못느꼈던 사람들, 알 수 없는 고객들이 얼만큼 숨어져있는지 파헤치기 시작한다면 사실 그보다 더 큰 시장이 있을까. 잠재력으로만 본다면 이쪽 또한 매력이 넘치는 문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랜 고생끝에 그나마 잘 풀어냈으니 이런 자기합리화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아이템을 사업화해야한다면 우선 문제부터 찾아내겠지만, 만약 과거로 돌아가 문제가 뭔지 모르는 걸 다시 할꺼냐고 물으면 하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기획자로서 느낄수 있는 최고의 희열을 느끼게 했으니까.
글 : 강미경
출처 : http://goo.gl/NiOr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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