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있다. 기업들의 성공적 위기관리 방식들에 대해 어떤 기업은 구경할 만 할뿐이라며 입맛만 다신다. 실제 저렇게 실천 할 기업들이 있을까 하지만, 사실 그 케이스들은 이미 현실에서 반복 구현된 것들이다. 유명한 존슨앤존슨의 성공적 위기관리 방식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따라 20년 후 다시 성공한 회사가 있다. 산텐제약의 이야기다.
2000년 6월 14일. 안약으로 유명한 일본의 산텐(參天)제약 회사 사무실에 소포 한 통이 도착했다. 그 소포 안에는 이물질을 넣은 이 회사 안약제품과 함께 “2000만엔(약 2억원)을 내놓지 않으면 시중에 동봉한 것과 같이 벤젠을 넣은 안약을 무차별 살포하겠다”는 협박장이 들어 있었다.
벤젠은 눈에 닿으면 화상과 상피의 손상이 나타나는 독한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자칫 소비자들이 벤젠이 섞인 안약을 사용하는 경우 실명이나 치명적 안구손상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이 협박에 산텐제약의 핵심 임직원들은 놀라며 해당 사실을 CEO에게 보고 했다.
산텐제약은 긴급하게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대응 옵션이 있었다. 첫째, 가만히 좀 더 기다려 보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그 협박이 실행 될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는 수준에서 섣불리 공표를 하거나 협박범을 접촉하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둘째는 외부로 알려지면 산텐제약의 명성과 이미지가 실추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협박범이 원하는 돈을 주고 좋게 마무리 짓는 것은 어떤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세 번째는 협박범이 실제 실행을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상해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산텐제약 스스로 외부 공표를 하고 소비자들을 보호 할 수 있는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다.
고민 끝에 산텐제약 모리타 다카카즈(森田隆和)사장은 이날 저녁 기자회견을 열어 협박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그리고는 “경영상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제품을 전량 회수해 고객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언론에게 이야기했다. 이 뉴스는 일본의 전 언론들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전달되었다.
다음날부터 산텐제약은 전 사원을 동원해 해당 제품 회수에 나섰다. 전국 7만개 소매점에서 판매하던 자사의 가정용 안약 24개 품목, 250만개를 5일만에 모두 회수하고 TV광고도 전면 중단했다. 동시에 산텐제약으로부터 협박사실을 공유 받은 경찰은 해당 범인을 찾아 나섰다.
협박범은 이제 산텐제약을 협박할 근거가 없어져 버렸다. 소비자들도 유해성분이 들어 있는 위험한 제품에 노출되지 않게 되었다. 단, 산텐제약이 감수해야 했던 제품 회수 비용은 약 3억엔(약 3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산텐제약은 협박범이 노리던 위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졌다. 이에 더해 소비자들로부터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하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어려운 선택’이었다는 평가와 박수를 받았다.
산텐제약의 모리타 다카카즈(森田隆和)사장은 대책회의에서 전량 회수 반대 의견에 대해 시간을 끌면 소비자가 다칠 수 있고, 협박범의 요구에 응하게 되면 모방범죄에 계속 시달려야 한다는 논리로 주변 임원들을 설득했다. 협박범이 요구한 금액의 십여 배가 넘는 회수 비용이라도 소비자 안전을 위해 쓰는 투자라는 철학을 가지고 어려운 의사결정을 했다.
10여일 후 경찰은 협박범을 잡았다. 무직에 빚을 지고 있던 50대 중년남성으로 돈이 필요해 협박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산텐제약의 위기관리 형식과 전략은 80년대에 발생 해 이미 주목 받았던 존슨앤존슨의 청산가리 타이레놀 케이스와도 매우 유사했다. 협박범의 위협에 수면 하에서 대응하기 보다 공표를 하고 소비자 안전을 위해 협박의 타겟이 된 제품들을 전량 회수 해 소비자들과 격리 시켜버리는 동일한 프로세스를 밟은 것이다.
내부적으로 공개 회수 비용에 대한 재무적 부담과 기업 이미지 부담에 대해 고민 했던 과정도 서로 유사했다. 그러나 이를 내부적으로 완전히 극복하고 어려운 실행을 재빨리 해 치웠다는 점 또한 유사했다. 많은 기업들은 이렇게 일정 성공사례들에 대해 ‘그들이니까 할 수 있었던 것일 뿐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야기한다.
자신들이 평소 주창해 왔던 철학을 위기 시 그대로 위기관리에 투영하기 힘들어한다. 일부에서는 존슨앤존슨과 산텐제약이 ‘무리한 대응’을 했다 보기도 한다. 협박범의 행동반경을 예상하고 여러 수사 정보들을 취합하여 한정된 지역에서의 비밀스러운 일부 제품 회수가 더 효율적이고 전략적이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어떤 전문가는 이 위기관리 의사결정이 투자자들에게는 또 다른 위기를 의미한다고도 지적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전의 여러 성공적 위기관리 사례들을 ‘구경하는가’ 또는 ‘실천하는가’에 따라 성패가 다시 갈린다는 점이다. 우리가 위기 케이스들을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원 포인트의 배움을 취하는 이유는 우리가 위기 시 그 성공 요인을 상황에 맞추어 실천하기 위해서다. 기업 CEO와 위기관리 담당 임원들은 과연 자신의 회사가 존슨앤존슨과 산텐제약의 이런 성공 요인들을 이야기하고 구경만 하는 기업인지, 그러한 위기가 오면 스스로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기업인지 한번 생각 해 보자. 할 수 없다면 왜 실천하지 못할 것 같은지 토론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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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는 상황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로 나뉩니다. 이 글은 위기 발생 후 기업, 정부, 공기관등이 위기관리를 위해 실행 한 커뮤니케이션 중 하나의 성공 포인트만을 잡아 예시한 것입니다. 즉, 이 원 포인트가 해당 케이스 위기관리 전반의 성공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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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용민
원문 : http://goo.gl/uDDJ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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