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오피스2010] 처음 만났던 아래아한글을 떠올리다

“보이는 대로 다 되네?”

위지위그(WYSIWYG)란 말은 1970년대에 등장한 용어입니다. 제록스연구소가 내건 이 개념은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그러니까 보는 대로 얻는다는 걸 뜻합니다. PC 사용자가 화면에서 보고 있는 내용과 똑같은 출력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얘기죠.

위지위그는 ‘브라보’라는 소프트웨어에 처음 적용됐고 나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지금이야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에는 혁신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굳이 70년대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놀라기엔 충분했죠. 1989년인가 아래아한글 공개버전을 처음 봤을 때처럼.

보석글이나 하나워드 등이 태동하던 시기. 사설BBS에서 JPEG 파일 하나 내려 받겠다고 게시판에 열심히 글을 쓰던 시절(이렇게 고생해서 포인트 모은 다음 어렵게, 그것도 사진 한 장 달랑  받았는데 수영복이라도 입고 있으면 에휴). 흔한 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 워드프로세서는 V3과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결국 대학생 개발자 이름으로 나열해놨던 이 워드프로세서는 1.51판을 내놓으면서 한글과컴퓨터라는 간판을 내걸게 되죠.

한글의 인기를 엄청났습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당시는(90년대 중반까지)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파피루스나 훈민정음, 아이랑, 윈워드, 글마당, 오아시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초기 아래아한글은 지금의 소프트웨어나 서비스가 추구하는 모양을 닮았습니다. 의도했다기보다는 기술적 한계나 인프라 탓이 컸을 것 같지만. 아무튼 한글은 가벼웠고 단순했으며 빨랐습니다.

이건 마치 좋은 문장의 조건과도 같습니다. 명료함과 간결함, 간소함이 좋은 문장을 만들 듯 아래아한글은 말 그대로 꼭 필요한 문서 작성 기능에 최적화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표 그리기 선을 똑바로 그리지 못했더라도.

아래아한글은 ‘마이크로소프트 침략’에 맞선 토종전사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내주지 않았다는 자긍심 넘치는 기사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당시 이찬진 대표는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별명을 얻기도 합니다.

이런 부담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MS 워드에 맞서려는 힘겨운 투쟁의 결과였을까요? 아무튼 아래아한글은 갈수록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꾸준히 변화를 시도합니다. 군 시절 막판에 나온 아래아한글 2.0은 커진 몸집과 수많은 버그로 몸살을 앓기도 했습니다. 물론 곧이어 나온 2.1 버전이 좋은 해결책이 되어줬지만.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로 전환되던 시기, 아래아한글은 다시 도스용과 윈도용으로 3.0 버전을 내놓습니다. 지금도 집에 고이 모셔놓은 한글 3.0 윈도 버전 아카데미판은 당시 유일하게 돈주고 산 소프트웨어이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진:한글과컴퓨터)

얼마 전 한글과컴퓨터가 아래아한글 2010을 포함한 한컴오피스2010을 내놨습니다. “한글을 지금도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야.” 반가운 마음이 들더군요. 비록 이젠 MS오피스와 함께 깔아놓고 쓰지만 단언하건대 몇 십 년 뒤에 죽음을 맞게 된다면 제 아들은 PC에서 아버지의 유서를 HWP 포맷으로 찾아야 할겁니다. 헤어지기엔 우린 너무 오래 만났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신 버전은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PC에 깔아놓은 아래아한글은 97과 2007 2가지 버전입니다. 2007 버전은 그냥 최신 파일 읽기용일 뿐 실제 문서 작업은 모두 한글97로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 나오는 한글은 너무 크고 무거우며 복잡하기 때문이죠. 실제 워드프로세서 사용자가 이런 기능을 얼마나 쓸까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윈도7을 발표하면서 1만 대가 넘는 PC를 사용 행태를 조사한 결과를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PC 사용량의 90% 이상은 이전에 썼던 것이나 매일 쓰던 것이었습니다. 1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많은 기능보다는 자주 쓰는 기능을 더 쉽고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글과컴퓨터는 한컴오피스2010을 발표하면서 정성스럽게 꽤 오랫동안 베타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수많은 기능을 분석했고 버그를 찾아냈습니다. 한글 초기부터 제품을 써왔지만 개인적으론 이렇게 CSI수사대처럼 기능을 분석하거나 찾아낼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 처음 들어갔는지 혹은 예전에 들어갔던 것인지 모르는 것도 많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써본 적도 없는 기능이 지금도 여전히 많습니다.

이런 건 잘 모르겠지만 아래아한글이 편해졌다는 게 UI가 보기 좋아졌다거나 그런 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UI가 MS 오피스를 닮았냐 그렇지 않냐에는 솔직히 관심이 없습니다. 닮아서 안도감이 드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산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이 너무 베꼈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이런 것보다는 함초롱체에 들인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게 더 건설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다만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다는 관점이 더하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사실 빼는 데(안 보이게 숨기거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이젠 워드프로세서로 자격증을 무조건 따야겠다거나 검정시험을 보거나 혹은 값비싼 워드 입력 아르바이트가 필요한 시기도 아닌 것 같은데 아직도 한글은 마치 책 한 권이라도 사서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덩치는 아닌지.

편의성이라는 걸 어떤 기준으로 봐야할까요? 메뉴가 탑다운이냐 열림 상자 형태냐는 트렌드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론 <Shift>+스페이스로 한영 변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MS 워드보다 편하게 느낍니다.

아래아한글 2010 버전에는 작성한 글을 블로그에 곧바로 올리는 기능이 있습니다만. 그것도 좋지만 우린 훌륭한 대안을 갖고 있습니다. 그냥 한글에서 작성한 다음 간단한 번거로움(복사)만 거치면 되니 말이죠. 복잡하게 로그인해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생각은 솔직히 없습니다.

차라리 아직도 무시 못할 한글 패키지의 위력(그리고 매력적인 가격까지 갖췄으니)을 등에 업고 서비스를 결합해두는 전략적 선택 같은 것에 더 무게를 두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한글과컴퓨터는 이미 싱크프리(온라인 포함)라는 훌륭한 SAS를 따로 둘 게 아니라 아예 한글 패키지와 연결하는 쪽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패키지는 마치 방안에서 터진 폭탄과도 같습니다. 파급력은 방안에 머물 뿐입니다. 하지만 서비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터넷과 아예 연동해 문서 온·오프라인 작성이 모두 가능하다거나 뭐 그런 상태가 된다면 향후 전자책에서 등장할 앱스토어의 ‘저자와 소비자간 직거래’까지 연결까지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오랜만에 만난 아래아한글 2010은 여전히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PC에 깔아놓은 97 버전을 바꿀 만큼 매력적인지는 (2005나 2007처럼) 생각을 조금 해볼 참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아래아한글에 대한 지지는 철회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3만원대라는 매력적인 가격 때문만은 아닙니다(한글만 사면 무려 2만원대). 다른 오피스웨어는 빼더라도 적어도 문서만큼은 MS 워드보다 훨씬 편하고 익숙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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