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알아야 할 ‘스타트업 정부 지원의 명암’

스타트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디어? 팀? 모든 것이 완벽해도 이게 없으면 할 수가 없다. 바로 자금이다. 성공에 대해 어떠한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스타트업은 보통 ‘ 남’이 준 돈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가족, 친구, 엔젤 , VC 중에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초기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남은 바로 정부다.

매해 정부 지원 사업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기사나 통합 자료가 불티나게 공유되고 매년 초 열리는 정부지원 사업 설명회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몰리는 걸 보면 정부 지원 사업은 명실상부 스타트업 필수 체크 리스트가 됐다.

아이디어 사업화부터 창업 교육, 공간 무료 지원, 해외 진출 등 지원 분야도 다양한 정부 지원 사업을 스타트업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본업에 영향 주는 과중한 행정절차=스타트업은 정부 지원사업의 과중한 행정 절차 때문에 본업까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지원서류를 작성하는 것부터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되고 사업에 선정되면 사업비를 지급받는 과정에서 업무는 더욱 가중된다. 본업에 매진해도 바쁠 시간에 증빙 서류를 작성하는데 시간을 다 보낸다. 사업을 성장시키려고 시작한 일인데 오히려 본업에는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정부 지원사업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사업화 자금을 지원해준다고 덜컥 지원했다가 시간과 인력만 쏟고 완성도 있는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지원을 핑계로 여러 행사에 불려 다녀야 하는 것도 업무 집중을 방해한다. 스타트업이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다음 사업에 지원할 때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도 받는다고 한다.

과제에 얽매여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경험해본 스타트업은 산소호흡기 달듯이 임시방편으로 정부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영위하느니 최소한의 비용을 쓰며 버티라고도 조언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즉각 대처해야 하는 스타트업에게는 본업을 더디게 만드는 정부 과제가 독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정작 필요한 곳에 못 쓰는 사업비=정부지원금은 자금 집행에 대한 규정이 까다롭다. 사업비를 사용할 수 있는 항목이 정해져 있어 스타트업은 사업비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없다. 사업 목적에 맞게 사업비를 사용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 정도 변동 사항에 대한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경직된 정책으로 인해 정작 필요한 곳에 쓸 돈은 대출을 받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팀도 있었다. 한 달만 돈이 늦게 들어와도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이 초기 스타트업인데 예정된 날짜에 지원금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일관성 없는 정책 변경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기업들이다.

또 사업 기간이 정해져 있어 항상 해당 시기에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기간 내에 지원금을 소진해야 하는 탓에 주먹구구식으로 예산 소진을 위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쓸 필요가 없는 곳에 자금이 낭비되는 것이다. 지원금만 타가는 좀비기업을 막기위한 방편이지만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컸다. 오히려 정직하게 사업을 운영하려는 기업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 누구를 위한 지원인가?=정부가 선정한 업체와 사업을 함께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골치가 아프다. 직접 시행기관을 선택할 수 없고 검증된 업체인지도 확인할 길이 없는 데다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도 나오지 않아 낭패를 보기도 한다.

공고에는 스타트업을 지원한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 스타트업은 자격 자체가 안되는 경우도 있다. 왜 떨어졌는지 몰라 연락을 해보니 아예 자격 미달로 심사에서 배제됐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이미 해당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매출이 나고 있는 중견 기업이 과제에 선정된 사실을 알게 돼도 별로 놀랍지 않다. 결국 기존 플레이어가 정부 돈으로 신규 사업을 진행하는 셈이다. 눈에 보이는 단기 성과를 중시하다 보니 모험성 투자는 하지 않는 것이다.

사업에 선정된 후에도 보증서 문제로 지원을 못 받기도 한다. 작은 회사들은 정부지원금만큼 보증이 나오지 않을 수 있는데 앞 뒤가 안맞는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건 기업이다.

사업 선정을 위한 심사위원이나 자문위원 의 전문성 부족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모르는 사업 담당자도 문제다.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현장 경험이 없고 해당 분야 전문 지식이 없는 심사위원은 개선될 사항으로 나타났다.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민관 기관의 관계인이 구색을 맞추기 위해 심사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한 하드웨어 스타트업 대표는 자신이 진행한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 심사위원석에서 자사 기술을 평가하는 희한한 경험도 했다고 전했다.

창조경제에 쓴 돈이 몇조가 넘었지만 아직 상장 성공 사례 하나 나오지 않고 불만의 목소리만 커지니 정부 지원이 소용이 없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온다. 그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정말 정부의 역할이 필요 없는 것일까.

◇ 초기 스타트업 성장 기회 제공=국내 스타트업 성공사례로 항상 언급되는 미미박스는 설립 초기 미래창조과학부 프로그램인 ‘나는 글로벌 벤처다’ 통해 해외 진출 기회를 얻었다. 이후 실리콘밸리 와이컴비네이터 국내 1호팀으로 뽑히고 국내외 VC로부터 누적투자액 약 1,800억 원을 유치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혁신적인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더 많이 알려진 점자 스마트워치 닷 역시 학생 시절 정부 기관 주최 IoT 창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진출 기회를 얻어 영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테크 비자까지 획득해  영국에 정착한 프론트로도 좋은 사례다. 이 밖에도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설립 초기 자리를 잡았다.

“설립 초기 정부 지원 사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회사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

“여전히 자금은 부족하지만, 정부 지원 사업으로 위기를 넘긴 적 있다.”

“지방에서 창업하고, 도움받을 곳이 없었는데 지역 창조혁신센터에서 도움을 받고 투자 연계 지원도 받았다.”

“학교에서 창업 교육을 받지 않아서 어떻게 시작해야지 몰랐는데 무료 교육이나 초기 지원금, 공간 지원 등이 큰 도움이 됐다.”

“정부 지원 사업의 특성상 서류작업, 행사 참여 등 본업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있긴 하지만 국민의 혈세로 개인 사업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많다.”

장기적으로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 스타트업 지원은 정부주도가 아니라 민간주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이견이 없 다. 하지만 국내 벤처캐피탈의 투자펀드 상당수가 모태펀드인 상황에서 모험적인 투자 환경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민간 투자가 활성화돼있지 않기 때문에 정부 지원금에 기댈수 밖에 없는 국내 스타트업 상황을 고려한다면 정부 지원사업이 필요 없는 것만은 아니다.

다만 경직된 운영 방식으로 방향성 없이 실적 위주로 이뤄진다는 점 또 단계별 지원보다는 초기 지원에만 집중됐다는 점, 비슷한 사업을 여러 기관에서 경쟁적으로 운영한다는 점 등 여러 부분에서 체질 개선은 불가피해보인다.

다행인 것은 여러 번 시행착오를 통해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1~2년 전보다는 이해가능한 수준으로 개선되가고 있고 정부기관도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새 정부가 들어서고 스타트업 민간 기관을 대상으로 정책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도 한 차례 이뤄졌다고 한다.

새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과제로 내놓았다. 일자리 창출에서 스타트업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스타트업 지원 방식이 선진화되고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해본다.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