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용감했다’란 두 마디 말로 이들을 표현하기란 클리셰(=진부한 표현)에 가깝다. 이재인/이재훈 공동대표는 태어나서 줄곧 함께 자라고 직장 생활을 하다 지난 2014년부터 동업을 해온 실제 형제다. 지금은 핸섬박스라는 사업을 통해 제품 소싱부터 배송까지 모든걸 두 형제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남자 형제 특성상 골백번 싸울 법도 한데 어릴 때 지겹게 싸워서 오히려 지금은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응수한다. 인터뷰 시작부터 그들의 무모한 도전이 궁금했던 이유다.
“이번이 세 번째 사업입니다. 첫 사업은 2014년에 시작한 모바일 앱 개발이었구요…” 두 번째는 어떤 아이템이었는지 차마 묻지도 못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단 사실이 이내 두 대표의 얼굴에서 읽혔으니까.
대전에서 차를 타고 올라온 두 형제가 기자에게 건낸 건 다름아닌 핸섬박스였다. 면도기, 면도날 카트리지, 쉐이빙폼으로 구성된 기본셋이다. 일단 기자 정신에 입각해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언박싱에 돌입. 인터뷰 중 제품 리뷰라니. 실로 오랜만이라 가슴이 뛴다.
핸섬박스를 시작한 계기는 철저히 형제의 경험에 의해서다. 자취생 시절 면도날을 교체 시기를 놓치고도 제때 주문을 못해 궁여지책으로 일회용품을 쓰다가 고생한 경험이 사업모델로 진화한 것.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국내외 다양한 쉐이빙 관련 제품을 벤치마킹하게 됐고 여기에 정기구독 형태를 덧붙여 지금의 핸섬박스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
형제끼리 사업이 녹록치 않을 것 같아 보였지만 각자 성향은 달라도 일을 같이 할 때는 다를 때의 장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그리고 형제다 보니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서 늦은 시간이나 주말도 관계없이 이뤄지는 꾸준한 대화를 장점으로 꼽았다. 일반적인 노사 관계였다면 언감생심이다.
큰형인 이재인 대표가 한마디 거든다. “보통 친구끼리 동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 친구는 나와 같이 놀 때만 맞았던 친구구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들은 형제라 어릴 때부터 치고 박고 살았던 사이다 보니 적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선 후회가 없는 편이라고.
지난 3월부터 공식 런칭해 현재 구독 회원은 200여명 남짓. 남성용 면도용품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남성 모발, 뷰티 등으로 확장해 남성용 그루밍 관련 커머스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주변에 유독 전기 면도기 신봉자가 많다. 왜 굳이 아날로그 방식 칼날 면도기냐고 물었다. 국내 면도기 시장은 약 3,000억원 규모다. 그 중 칼날 면도기는 2,000억원, 전기 면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1,000억 수준이다.
그런데 날이 여러 개인 요즘 방식 카트리지가 아니라 구형 방식의 양날형 면도기를 찾는 레트로족도 꽤 있다고 한다. 물론 전기 면도기 시장 역시 고려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전기 면도기의 세척이나 살균에 필요한 제품도 고려중이지만 모두 제모나 뷰티 관련 그루밍 시장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온라인 쇼핑은 쉽지만 주기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것을 주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떨어질 때를 예측해 미리 구입하는 준비성 또한 어지간한 남자들 사이에선 찾아보기 힘든 일 중 하나다.
나름 온라인 쇼핑에 일가견이 있다 하더라도 관련 제품이 많을 경우 일종의 ‘선택장애’가 오기 마련이다. 생활, 환경, 직업 등 다양한 사용자 특성과 소비 패턴에 따라 적당한 헤어, 향수, 바디케어 제품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형태의 서비스가 절실한 이유다.
핸섬박스가 면도용품을 시작으로 남성용 그루밍 관련 큐레이션 서비스를 생각한 것도 마찬가지. 에디터도 남자지만 가전제품과 달리 이런 분야는 포기가 빠를수록 편하다. 누군가 해 줄테니까.
물론 제품을 추천하는 데 있어 분명한 원칙은 존재했다. 다양한 기능보다는 면도기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것. 그리고 정기적으로 카트리지를 교환하는데 있어 편의성을 제공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사용 패턴도 중요하게 고려했던 부분 중 하나다. 2~3일에 한번씩 면도 하는 사람과 매일 면도하는 사람으로 나눠 별도의 패키지를 구성했다. 수염이 자라는 속도에 개인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면도기 사용량이 적더라도 면도날은 위생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보름에 한번은 교체할 수 있도록 패키지를 구성했다. 매일 면도를 할 경우 2주면 면도날이 무뎌져 피부에 손상을 줄 위험성도 높다고 하니 카트리지 개당 사용 기간 보름은 공식 아닌 공식이 돼 버렸다.
2달마다 결제가 되고 면도에 필요한 추가 구성품이 배달되는 만큼 가격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답은 금세 나왔다.
한마디로 오프라인 대형마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62% 정도 저렴한 패키지 구성이다. 가격적인 메리트도 있지만 매번 매장을 방문해 구입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대한 수고비가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배송비까지 무료다.
그래서일까. 핸섬박스의 주요 고객군이 영업, 보험, 컨설턴트 관련 등 시간에 쫓기는 산업 종사자가 유독 많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은 매일 말끔한 차림새로 하루에도 고객 수십명을 상대해야만 하는 직군이다.
제품 수급은 꾸준히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다. 유통이라는 산업에서 충분한 재고물량 확보는 경쟁력에 속하니까. 핸섬박스 본사가 위치한 대전에는 충북혁신센터가 있는데 마침 그곳이 LG생활건강과 연계돼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조만간 진행할 예정인 크라우드 펀딩 역시 충북혁신센터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 남성 그루밍 산업은 약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시장이다. 남성 그루밍 관련 샵이 많아질수록 개인 대상의 B2C 산업 역시 커질 것이라는 게 두 형제의 의견이다.
남성용 전문 헤어샵인 ‘바버샵’이 대표적인 예다. 마치 영화 킹스맨의 주인공처럼 말끔히 차려입은 남성 이발사가 이발 후 포마드를 바르고 면도하는 광경을 옛날 이발소의 풍경과 오버랩 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유행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유행은 돌고 돌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기 면도기라는 편리함 대신 칼날 면도기를 쓰는 걸 요즘 LP판을 듣는 것과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다소 불편하지만 면도가 끝났을 때 전기 면도기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매끈함이 주는 만족감은 이루 설명하기 어렵다. 면도 후 애프터 쉐이브가 주는 상쾌함은 또 어떤가.
그렇게 사춘기 시절 입 주위에 거뭇거뭇 몇 가닥씩 올라오던 수염을 아버지 면도기로 몰래 자르던 소년은 청년을 지나 이제 중년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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