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호두과자 만한 크기에 탄화규소(SiC) 혼합물로 온풍기 시장의 문을 두드린 남자가 있다. 벌집 모양의 격자 구조로 가볍고 발열 온도는 최대 2,000도에 육박해 온풍기에 발열 코어로 쓰인다. 냄새 제거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거의 ‘사기캐’에 가깝다.
하니콤코리아 서기식 대표의 명함 한 켠에는 공학박사(Ph.D)라는 또다른 직함이 써 있다. 세라믹을 전공하고 울산대학교 첨단소재공학부, 울산혁신센터를 거쳐 지금의 경기 화성 공장까지 오게 됐다.
서 대표는 탄화규소(SiC) 물질을 이용해 디젤 자동차의 매연을 제거하는 DPF 필터를 국내에서 최초로 상용화한 이력의 소유자다. 세계에선 두번째다.
“SiC발열체, 허니콤(벌집형) 구조는 제가 개발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던 기술이었습니다. 제가 한 건 여기에 저항 컨트롤 기능을 추가해 다양한 환경에서 조절이 가능하도록 고안 한겁니다”
허니콤 구조의 SiC 소재가 지닌 물리적이면서 전기적인 성질의 코어를 이용해 다양한 응용 제품을 고안하던 중 중증호흡기 질환인 메르스가 국내에 창궐했다.
여러가지 해결 방법이 있었지만 공기중 전염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열을 통한 살균이라 서 대표는 생각했다. 모든 공기를 하니콤코리아가 개발한 발열 코어에 통과시켜 살균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아이디어로 세상에 처음 나온 제품이 바로 ‘살균 온풍기’다.
헤어 드라이어에 있는 히팅 코일 보다 허니콤 구조의 발열 코어는 약 7,000배의 표면적을 지녔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발열하는 구조라 코어 양끝에 전극을 연결하면 코어 내부는 최대 2,000℃까지 온도가 올라간다.
순간적으로 가열이 되는 방식이다 보니 일단 열효율이 높다. 온풍기를 틀고 한참 기다려야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것과 달리 히팅 코어는 헤어 드라이어처럼 전원을 켬과 동시에 열을 내뿜는다.
두번째 장점은 냄새 제거다. 화장실, 담배 등을 효과적으로 제거한다. 고온으로 냄새 분자를 기화시키는 방식이다. 살균 역시 같은 원리로 가능하다.
실제 농업용으로 사용 중인 시제품을 시연해 보니 본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전기히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서 대표에 따르면 산소 농도의 변화를 주지 않는다고 한다. 산소 분자를 건드리지 않아 습도가 항상 동일하다고. 히터 방식은 공기 중 수증기를 증발 시키기 때문에 습도 변화가 생긴다. 한마디로 아무리 오랫동안 난방을 해도 건조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난방기기로 화석연료를 쓰는 제품을 고수한 이유는 에너지 효율이 높지 않아서였다. 전기 히터를 쓰면 냄새도 나지 않고 화재 위험도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난방비는 누진세의 적용을 받기 쉬운 것도 한 몫 한다.
에너지 효율을 물었더니 무려 97%라고 한다. 예를들어 1.5 kw 헤어 드라이어의 경우 70%의 효율을 낸다. 신기한 건 에너지 효율이 아니었다.
발열 코어를 제외한 난방기 본체 주변의 온도 변화가 전혀 없다. 원래 난방 기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체까지 덩달아 달아 오르기 마련인데 하이콤코리아의 시제품 본체는 마치 전원이 꺼진 것처럼 차갑다.
히팅 코어에 자체 안전장치가 있는데 황동으로 된 전극이 코어 최대 온도인 2,000℃에 접근하면 다 타버리는 구조다. 그렇게 되면 이미 전원이 끊어져 더이상 전기가 흐르지 않는 부도체가 된다.
심지어 전자파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발열 코어 안에서 전류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아(회로가 없으니까)서다. 전자파는 전류가 일정한 루트(회로나 소자)를 따라갈 때 발생한다.
하도 장점만 지녀서 ‘사기꾼’ 소리도 종종 듣는다고. 서 대표는 억울한 마음에 ‘5대균’인 대장균·포도상구균· 녹농균·살모넬라균·뮤탄스균을 100% 살균한다는 시험성적서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농업용부터 차량용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한데 이것 역시 제어 회로를 통한 전류 제어 방식이 아니다. 발열 코어를 제조할 때 성분을 조절해 저항값을 바꾸는 방식이다. 따라서 가정용 220V용이나 차량용 12V에 쓰이는 히팅 코어의 크기는 동일하다. 시제품으로 만든 최대 용량은 농업용 비닐하우스에서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15kW가 있다. 발열 코어가 25개가 들어간다. 코어 한 개당 용량은 500W 정도다.
“사기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솔직히 기능에 대한 의심은 없었지만 단점이 별로 없어 보여 본체 외형으로 딴죽을 걸었다. 처음부터 농업용 시장을 보고 제작을 하다 보니 디자인보다는 튼튼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캠핑용이나 가정용 같은 B2B 시장 공략을 위해선 사출 작업을 해야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것도 한몫 한다.
농업 말고도 히터가 쓰이는 의외의 장소를 듣게 됐다. 바로 식육용 닭을 기르는 양계장이다. 육계는 보통 한달 정도를 키우는데 사육장 온도가 낮을 경우 살이 잘 불어나지 않기 때문에 온풍기를 일교차가 심한 요즘도 온풍기를 쓴다.
국내 소비자의 특징 중 하나인 ‘신제품에 대한 호기심’은 비단 IT 기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서 대표는 이 사업을 하면서 왜 해외에서도 우리나라를 테스트 베드로 쓰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일단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안전하게 적정 수준으로 제품을 쓰지 않고 100%까지 성능을 끌어올려 극한으로 쓰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제품 고장도 잦다. 하지만 반대로 남들보다 앞서 가더라도 남이 안 쓰면 자신도 안 쓰겠다는 고집도 동시에 있는 게 국내 시장의 특징이다. 마치 의료기기처럼 미리 제품을 써볼 수 있도록 체험 기회를 만들어야 영업이 가능한 시장이란 얘기다.
발열 코어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해 보였다. 앞서 예로 계속 나왔던 헤어 드라이어가 대표적이다. “안그래도 그쪽 업체에서 관심도 많고 문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생산 단가더라구요.” 히팅 코어 가격이 개당 1만원씩인데 이걸 상품화 시키면 코어 한 개를 쓰는 헤어 드라이기라 하더라도 최소 10만원의 가격표를 붙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 가격에 헤어 드라이어를 팔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경쟁사 제품에 대한 아쉬움도 피력했다. 제품 특성상 공기청정기, 온풍기, 난방기와 비교를 많이 하게 되는데 디자인에 대한 강조가 너무 많다는 게 서 대표의 생각이다. 엔지니어 출신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알맹이 없이 디자인 만으로 승부를 거는 제품을 종종 보게 돼 안타깝다고.
“소비자는 ‘디자인도 기술’이라 말하지만 제 생각엔 너무 터무니 없이 비싸게 팔리는 거 같아요” 140만원에 팔리는 공기 청정기는 10만원 정도면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더란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제품 후기를 봐도 전부 디자인 이야기 뿐이었다.
서 대표는 B2C 시장의 경우 물론 가슴은 뛰지만 아직은 숨을 고르고 천천히 진입하고 싶은 욕심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는 만큼 디자인에 대한 고민 역시 충분히 하고 관련 승인을 받아 차근차근 진행하고픈 욕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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