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만들어져 시장에 나오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창업자 대부분이 초기에 겪는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그 과정에 대한 막막함이 아닐까 싶다.
경험 많은 선배 창업자의 도움을 받든지 창업학교에서 함께 나누며 배우는 게 가장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회 없이 스스로 제품 개발 과정을 이끌어야 한다면 경험하지 못했던 수많은 한계에 부딪치며 탈진하거나 포기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은 이 모든 개발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그 제품을 판매하지 못할 때다.
뉴욕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니 한국에서 방문한 창업자를 멘토링해주거나 제품 컨설팅할 기회가 자주 생긴다. 의뢰 받은 제품 대부분은 미국에서 팔리는 다른 제품보다 완성도가 높고 패키징 수준도 평균 이상이다.
아쉬운 점은 이런 상품 가운데 미국 시장에서 정작 판매에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게 많다는 것이다. 제품 완성도나 패키징이 좋은데 팔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제품 개발을 끝내고 이미 마지막 양산 단계에 도달한 제품은 미국 바이어나 마케팅 전문가에게 “판매에 적합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는 상황을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직접 개발한 제품을 다른 국가 특히 그 중에서도 큰 미국 시장에 내놓고 싶은 창업자는 많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시장에 맞춰 자신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까. 제품 개발 초기 단계를 함께 살펴보면서 해답을 찾아보려 한다.
보통 알려진 제품 개발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① 아이디어 ② 리서치 ③ 디자인 스케치 ④ 3D CAD 설계 ⑤ 목업 ⑥ 오픈툴링 ⑦ 양산 샘플 ⑧ 패키지 디자인 ⑨ 생산이 그것.
이 과정 중 초보 창업자가 어려워하는 부분은 중후반기 그러니까 전혀 엄두가 나지 않는 3D 설계 이후 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제품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초기 과정이다. 후반 과정은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초기 과정은 상당 부분을 개발자가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아이디어에서 리서치, 디자인 스케치까지 초기 3단계를 생략하거나 소홀하게 진행하면 자신의 아이디어가 상품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마지막 생산 단계까지 흘러가게 된다. 자칫 그때까지 쏟은 노력이나 자금, 시간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개발 초기 단계부터 위에서 언급한 문제, 이 제품이 시장에서 팔릴지 아닐지를 미리 검증해야 한다.
창업자는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가 잘 팔릴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이런 확신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없이 무조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신뢰하려는 경향을 가진 창업자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제품 개발 초기는 이런 개발자의 확신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일반 창업자가 제품 개발 초기 3단계에서 놓치지 쉬운 부분 또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건 뭘까.
◇ 제품 개발 초기=제품 개발 과정의 출발점은 크게 2가지 다른 상황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기업이 새 제품을 개발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창업자가 개발하는 상황이다. 기업은 이미 제품을 구입할 바이어가 있고 풍부한 리서치 데이터를 갖고 시작한다. 이에 비해 창업자는 대부분 아이디어만 갖고 시작한다. 이렇게 아이디어만 갖고 시작할 때에는 양산 과정을 서두르고 싶은 마음에 초기 리서치 연구 과정을 소홀히 하기 십상이다. 창업자 대부분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리서치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으면 자신의 아이디어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기 어렵다.
개발자가 충분히 시간을 두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충분한 리서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발 과정 초기 아이디어에 대한 검증을 하면 만일 잘못됐다면 초기에 수정하거나 프로젝트를 포기, 시간과 자금 낭비를 막을 수 있고 적합하다면 리서치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실수를 줄이고 성공에 더 근접할 수 있다. 아이디어에 대한 리서치 순서를 보면 이렇다.
① 아이디어 일반화 : 나의 생각을 일반화하기=개발자가 생각해낸 거의 초기 아이디어는 주관적이다. 다시 말해 자신만의 생각인 것. 자신만의 경험과 문제 해결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런 주관적 아이디어를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보며 일반화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자기 안에 갇혀 있던 아이디어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도 똑같은 경험을 하는지? 혹은 다른 사람도 이 물건을 원하는지? 같은 문제로 얼마나 불편해하고 이 제품을 얼마나 열망하는지 등등. 자신의 아이디어가 틀렸다는 가정을 하고 아이디어의 장점과 문제점이 뭔지 조목조목 나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질문을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질문하고 시각적으로 노트에 정리하면 더 좋다. 이런 초기 정리 노트는 나중에 바이어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기회가 온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경험 많은 전문가에게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자문을 받기를 권한다. 선배 창업자나 제품 디자이너를 만나보라. 만일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다면 주변에 있는 지인에게 생각을 묻거나 인터넷을 통해 심도 있게 찾아보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가 어떤지 분석해볼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존 제품과 이미 중복되거나 대량 생산 실현이 불가능하거나 시장성이 없다면 판단됐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과감히 접어야 한다. 이미 상품성이 없는 아이디어를 붙들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 이 일반화 리서치를 하는 이유는 아이디어를 좀더 발전시키려는 것도 있지만 가치 없는 아이디어는 포기하는 결정을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 지인이 자신이 낸 아이디어로 제품을 개발해보겠다고 자금을 마련하고 공장도 알아봤다며 디자인을 도와달라는 문의를 해온 적이 있다. 아이디어를 들어보니 안타깝게도 인터넷에서 한 번 본적이 있는 것이었다. 이미 제품화된 이미지를 찾아서 보여주니 상심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다행인 건 아직 자본이나 시간을 본격 투자하지 않아 손해 본 게 없다는 것이었다.
② 아이디어 일반화 : 세계 시장 분석=아이디어가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이제 더 넓게 세계 시장을 분석한다. 한국에서만 팔릴 제품인지 다른 문화권에서도 쓰일 만한 같은 라이프스타일 제품인지 리서치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평가해봐야 한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는 광범위하기 때문에 혼자 수행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당 국가에서 자신의 아이디어 제품이 쓰일 상황, 연령대 등으로 범위를 좁혀서 분석하는 게 좋다.
아이디어 일반화와 제품 사용에 대한 라이프스타일 분석을 통해 상품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 이제 제품 개발을 위한 자세한 리서치를 시작한다. 이제야 비로소 제품 아이디어에 집중해 본격적인 리서치를 시작하는 것이다.
③ 상세 리서치=먼저 아이디어 마켓 리서치. 혹시 유사한 특허나 제품이 존재하는지?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제품 트렌드는 뭔지. 경쟁사는 어디인지. 이들 제품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추가할 기능이나 빼야 할 기능이 있는지 여부 등이다.
다음은 사용자 리서치. 사용자 그룹은 어떤 연령층인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는지, 어떤 문화인지, 지역별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하는지, 그들이 제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이다. 마지막으로 판매 가능한 리테일러는 어디가 될지도 체크하는 게 좋다. 이 제품이 월마트나 타깃 판매용인지 혹은 아마존이나 홈쇼핑, QVC 등인지 여부다.
④ 리서치 시각화=리서치를 통해 수집한 이미지나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보드에 정리하다보면 자신의 아이디어가 어디에 놓여있는지 알게 된다. 콜라주처럼 생긴 시각화 표를 만들어보라. 리서치 노트에 그동안 수집했던 이미지를 한눈에 알아보게 정리해 모아두는 게 좋다.
⑤ 리서치 분석=이 과정을 마쳤다면 이제 보드를 보면서 현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는 현재 시장에서 팔리는 다른 비슷한 제품과 어떻게 다르고 어떤 점이 비슷할까. 팔릴만한 요소는 뭐가 될까. 아이디어를 보완하고 수정할 수 있다. 이 분석 과정은 개발 후반기까지도 계속 되어져야 하며 마지막 제품의 CMF(Color, Materials, Finish)를 결정하는 것도 이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게 된다.
⑥ 스케치=잘 훈련된 제품 디자이너는 자신의 생각을 스케치를 통해 표현한다. 스케치 과정은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과정 혹은 정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 것인지 드로잉 과정을 통해 짧은 시간에 1차적으로 분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스킬이 없는 일반 창업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미지를 모으고 노트를 다는 콜라주를 할 수도 있다. 그림을 못 그려도 나중에 디자이너에게 디렉션을 주기 위한 간략한 메모, 그림을 그려놓는 게 좋다. 그림을 그리든 콜라주를 하든 중요한 건 종이 위에 정리하는 것이다.
자. 이제 아이디어에 대한 데이터가 생겼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도울 정리 노트는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마치 유명 맛집의 레시피 노트처럼 머릿속에 있고 이미 손에 익숙한 것이어도 정리를 하면 달라진다. 이런 리서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분석하고 발전시켜 나가면 상품성이 없는 제품을 만들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어떤 제품이 시장에서 팔리는 과정은 마케팅과 세일즈를 맡은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제품이 좋다고 무조건 잘 팔릴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발 단계를 건실하게 수행해 아이디어가 든든하고 제품이 좋다면 잘 팔릴 가능성도 훨씬 높아진다. 이 부분만큼은 개발자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개발 초기에는 그래도 개발자는 유연하다. 아직까지 많은 시간과 자금 투입 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 후기라면 비판을 수용하기 쉽지 않다. 제품이 자식처럼 느껴지고 그동안 쏟은 노력과 시간이 떠오르는 탓이다.
한국에서 온 한 창업자가 완성한 제품 샘플을 갖고 문의를 해온 적이 있다. 미국 시장 판매처를 찾고 있다는 것. 가정이지만 마치 컴퓨터용 마우스인데 기존에 없는 기술이라고 말하는 격이다. 품질은 물론 유명 브랜드 정도는 됐다. 가격이 고가에 속한 이유를 물으니 자체 개발한 것이어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눈에 띄는 특별한 다른 기능은 없었다. 기존 중고가 마우스 제조사와 비슷한 기술력에 비슷한 품질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경쟁사보다 브랜드 파워가 약한데 이 제품을 어떻게 그들과 비슷한 고가로 팔 수 있냐는 것이다. 자체 개발을 위해 투자한 자금과 노력 탓에 중저가로 팔 수 없다지만 결국 팔 수 없는 제품을 들고 온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그 제품이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노력, 자금 때문에 포기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애물단지로 보였다.
불행하게도 바이어는 이런 제품을 자체 개발했는지 안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대신 상품성이 있냐 없냐 그러니까 팔릴만한 제품인지 아닌지를 본다. 자신의 기술만 믿고 경쟁사가 즐비한 곳에 물건을 내놓기에는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프로젝트를 마지막까지 끌어 왔지만 결국 미국에선 판매처를 찾을 수 없었다. 개발 초기 시장 리서치만 심도 깊게 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창업자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이렇게 마지막 단계까지 끌어온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창업자 자신이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초기 개발 3단계(아이디어 일반화→리서치(상세리서치, 시각화, 분석)→스케치/콜라주)는 중요하다.
이런 리서치 단계가 끝나고 아이디어가 성공할 수 있다는 분석과 확신이 생기면 자금을 모으고 전략을 세워 나머지 개발 단계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개발은 혼자 할 수도 있지만 파트너와 협력자를 곁에 두는 게 훨씬 순조롭다는 건 말할 나위 없다.
이 모든 과정에서 창업자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통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다른 이들의 생각과 피드백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넓히며 큰 세상의 생각을 읽는 과정 말이다. 소통을 잘 하는 개발자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프로젝트 하나에 실패했더라도 이미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한 만큼 계속되는 프로젝트에서 강한 저력으로 큰 추진력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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