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통신업계를 혁신한 프리(Free) 창업자인 그자비에 니엘(Xavier Niel)이 얼마 전 문을 연 프랑스 최대 스타틑업 캠퍼스인 스테이션F에 막대한 투자금을, 그것도 사비를 들여 설립한 바 있다. 프랑스 스타트업계에선 전설적 존재로 불리는 이 건물이 이런 엄청난 업적을 세운 게 스테이션F가 처음은 아니다. 그자비에 니엘은 지난 2013년 야심차게 설립한 강사나 교과서, 학비 3가지가 모두 없는 IT 기술 학교 에꼴 42(Ecole 42)가 그것이다.
파리 북서쪽 17구에 위치한 이 학교는 5,000m2 면적에 자리 잡았다. 벽에는 길거리 예술 작품이 가득하고 로비에는 스케이트보드가 즐비하다. 미래 IT 주역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교류 공간, 아이맥으로 가득한 커다란 실습실 3곳, 게임 공간, 드넓은 테라스, 샤워실 등도 위치하고 있다. 불어로 학교를 의미하는 에꼴은 그야말로 젊은이들이 치열하게 학습하고 소통하며 생활할 수 있게 꾸며졌고 매일 24시간 운영된다. 그자비에 니엘은 이 시설과 아이맥 수천 대 구비를 위해 2,000만 유로, 한화 269억 원대를 투자했다. 운영비도 매년 700만 유로에 달한다고 한다.
에꼴42를 조사하려고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여러 기사와 블로그 글을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만 18세에서 30세 청년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이 기관에는 앞서 밝혔듯 강사도 교과서도 학비도 없다는 것이다. 강사나 교과서를 없앤 건 오늘날 젊은이들이 불확실함과 가능성,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꼴42 공동설립자인 니꼴라 사디학(Nicolas Sadirac)은 한 인터뷰에서 “우린 학생들이 지식을 얻어 나가길 바라지 않는다. 모든 지식이 인터넷에 다 있는데 뭐하러 머리에 쌓아야 하나? 학생들이 정보가 필요할 때 이를 검색해서 얻는 능력을 키우길 원한다. 지금처럼 나날이 변화하는 시대에는 오늘 통용되는 정보가 하루아침에 더 이상 소용없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실에서 마주치는 과제를 해결하려면 필요한 개념과 이론을 인터넷에서 알아서 찾아 응용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강사도 없고 교과서도 없어 마냥 좋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에꼴42는 청년들에게 꿈꾸는 일을 맘껏 펼치길 바라기 전에 치열하게 자신을 갈고닦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에꼴42는 3년 설계 과정이지만 개인에 따라 2년 안에 끝내기도 하지만 몇 년씩 더 지내고 졸업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동기와 끈기다. 실제로 한 청년은 에꼴42를 가능한 한 빨리 졸업해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걸 목표로 한다. 매일 아침 10시 전에 도착해서 밤 10시 이전까지 책상 앞을 떠나는 일이 드물다. 주말 역시 쉬는 일 없이 집중 훈련에 매진하다 보니 시간 개념이 없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에꼴42는 2017년 전 세계 IT 기술 학교 중 상위 3번째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2014년 론칭한 프랑스 플랫폼 코딩 게임(CodinGame)은 전 세계 프로그래머와 개발자 수억 명을 모아놓고 코딩 대결을 펼쳐 실력을 가르고 순위를 매긴다. 개발자 사이에선 오락인 동시에 자존심 대결의 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700개 기관 출신 엔지니어 1만 3,000명을 대상으로 대결을 벌인 결과 최상위 5명이 에꼴42 출신이었다고 한다. 해당 플랫폼의 본거지가 프랑스인지라 결과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럼에도 에꼴42 관계자들은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학비를 마련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이 학교는 입학생을 선발할 때 학력도 안 본다. 여러 이유로 학업 기회가 닿지 않았던 청년을 차별하지 않고 균등한 기회를 부여, 훌륭한 인적 자원으로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에꼴42 학생은 중졸에서 비평준화 상위권 대학교 졸업생까지 학력 차이가 다양하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에꼴42에 모여 공부를 하고 졸업한 청년은 평균 4만 2,000유로(한화 5,600만원대) 연봉을 받고 취업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에꼴42 분교가 생겼는데 학자금 대출만 1조 달러가 넘는 미국에서 무료 교육 제공을 위한 비전을 위해 세웠다고 한다. 페이스북 워크플레이스의 한 디렉터에 따르면 그자비에 니엘과 마크 주커버그가 만나자마자 수십 분간 에꼴42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수많은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해커톤을 개최하기 위해 에꼴42를 찾기도 한다. 이틀간 쉴 틈없이 꼬박 이뤄지는 해커톤은 주로 주말에 열린다. 수많은 학생이 참여해 실제 시장 한 가운데 있는 스타트업이나 대기업 과제를 하며 감각을 익힌다. 에꼴42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렇게 현실 감각과 협력하는 역량을 키워준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꼴42는 매년 1,000여 명 가량을 선발한다. 이곳에 지원하는 청년 수는 7만 명에 달한다. 국내에 있는 수많은 IT 꿈나무도 에꼴42에 진출하거나 혹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창의적 교육 기관이 생겨 청년들이 글로벌 IT 인재로 거듭나고 한국 경제를 이끄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통역번역대학원 출신 전문 번역사로 이뤄진 번역 스타트업 바벨탑이 번역한 번역본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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