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그때부터였던거 같아요. 우리집은 왜 파산했을까, 우리학교 재단은 왜 쓰러졌을까… 이런 의문을 갖던 와중에 ‘파이넨셜 매니지먼트’라는 과목를 듣던 중 “기업은 타임머신이다” 이 한마디에 꽂혀 창업을 결심하게 됐죠.” 90년대 미국 서부 지역으로 유학을 떠나 실리콘밸리의 흥망성쇠를 직접 목격하고 동부로 이주해 공학도 생활을 하다 우연한 기회로 금융계로 빠지게 된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에임(AIM)의 이지혜 대표 이야기다.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자 나름 짠한 이야기임에도 이미 해탈의 경지에 오른듯 담담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가장 형편까지 나빠지자 경제 감각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잠시 돌아가 경영 관련 공부를 하게됐어요.” 이 대표가 대학교 2학년 재학시절 벌어진 일이다.
당시 미국은 경영학과 보다는 MBA쪽이 많았고 학비 부담도 덜기 위해 서울대 경영대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된 것. 자산운용 분야는 금융계에서도 사회적 가치가 가장 높다. 자산운용 분야야말로 ‘불행해지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돕고 싶다는 이 대표의 평소 이념이 고스란히 녹아든 분야였다.
공대 출신이라는 이점을 살려 시티그룹 자산운용사로 근무할 때는 알고리즘 관련 업종에 주로 투자했다. 그리고 3년 만에 정부 규제로 인해 ‘부서 공중분해’라는 또 한번의 위기와 직면하게 되면서 보다 큰 알고리즘 투자 전문사로 이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곳에서 습득한건 효율성의 극대화였다. 자동화가 잘 되어 있어 효율성이 높았는데 100조원 이상의 큰 금액을 운용하는 곳이었지만 인원은 채 20명이 안될 정도였다고. 개도국 투자처의 정보를 구하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십년전인 2007년에 머신러닝을 처음 도입했을 정도. 그렇게 습득한 알고리즘은 창업후 고스란히 에임에 도입했다. 경쟁사는 대부분 40명 정도의 규모지만 에임은 8명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신은 육체를 지배’하기 마련이다. 너무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일하다 보니 슬슬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 것. 하루하루 모니터링하면서 마치 자신이 ‘타인을 위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찍어내는 공장 기계 같은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었다. 하루 평균 거래량이 1조원에 달하다 보니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잖던 터였다.
이제 창업 타이밍이라 생각했지만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 그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니까. 근무하던 곳의 인력이 모두 박사급인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창업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하바드에서 MBA 예비박사과정(Pre-Doctorate)을 하던중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잡 오퍼를 받게 되면서 한국행 기회를 얻게되면서부터다. BCG에서 1년간 근무 후 더벤처스에서 빙글 관련 업무를 맡고 미국 진출과 투자유치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타트업과 창업에 눈을 뜨게됐다. 이 대표에겐 창업전 마지막 수업이었다. 물론 당시엔 창업 이후 과정이 좀더 험란할지 꿈에도 몰랐겠지만.
대한민국 실제 은퇴 연령은 평균 52세다. 하지만 국가에서 이들을 품고 수용하는 연금 수령시기는 13년 후인 65세부터 시작된다. 띠가 한바퀴 돌고도 남는 시간이다. 30년 일하고 40년 더 사는 백세인생임을 고려하면 이들이 감내해야하는 충격파는 더욱 크다. 이 대표는 이를 ‘경제적 죽음’이라 말했다. 모든 초기 스타트업이 직면한 데스밸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을 가볍게 표현하고 싶다.’라는 목표로 만든 게 에임이다. 급여만으론 집 소유도 버거운 게 현실이지만 전체 인구 중에서 불과 10%만이 투자하는게 우리나라의 투자 현주소다. 반면에 미국은 절반 정도의 인구가 그들의 노후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를 한다. 우라나라의 투자 불균형이 빚은 결과는 한마디로 참혹하다. 금융시장이 왜곡되다 보니 연평균 4~5%의 수익률을 내는 중위험군 투자인 부동산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자상품으로 변질됐다.
연평균 7% 수익율의 상품에 동일한 조건으로 투자를 할 경우 1억원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7년이다. 불과 1년 정도의 시간차 밖에 없다. 수익률이 3배라고 해서 목표 달성을 1/3로 단축시키는 단순 계산이 아니란 얘기다. 어차피 절대적으로 5년 이상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에임은 일반인이 두려움 없이 꾸준히 금융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안전한 포트폴리오로 구성된 상품으로 구성했다. 에임은 글로벌 분산투자를 통해 지수연계 ETF 상품에 주로 투자한다. 변동폭이 커봤자 1% 내외인 상품이다. 따라서 투자 ‘뉴비’도, 새가슴, 쫄보도 마음편히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다. 큰 손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얘기다.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자에게 꼭 맞는 맞춤형 투자를 제공한다. 금융자산 현황을 비롯해 투자 선호도나 위험 감내도까지 변수로 적용해 모든 투자자가 각기 다른 투자 포트폴리오를 컨설팅 받게 된다. 그렇다고 제아무리 ‘간 큰 투자자’라 할지라도 벼랑으로 내모는 법은 없다. 위험 감내도가 높더라도 시장의 위기를 감지해 지킬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 두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이후론 모든 자산이 호황국면인데 이것 역시 미리 감지하는 게 필요. 시장에 다양한 덫을 놓고 변화가 감지되면 고객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둠. 현재 5.52~16.73% 수익률을 내는중
77개국 12700개 해외 기초 자산에 투자 하는데 일반인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초저위험 분산투자’를 지향한다. 투자 관련 컨설팅은 전용 모바일 앱을 통해 원격으로 받고 투자 결정을 통한 주문은 본인이 직접 진행하는 방식으로 ‘비대면 거래’의 규제를 해결했다. 주문 버튼만 누르면 에임의 서버가 해외 주식 매수를 비롯한 모든 매매 과정을 자동화해 처리한다. 퇴근 후 여가시간에 잠시 짬을 내 투자 컨설팅을 받고 투자 결정을 해두면 ‘당신이 잠든 사이’ 지구 반대편 뉴욕 시장에서 열리는 주식 매입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 했다. 이 대표가 고객의 자산을 증식 보다 중요한 게 ‘그들이 맡긴 자산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주식 시장에 위기가 도래했을때 일반인이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항상 달고 사는 이유다. 실제로 고객이 견딜 수 있는 낙폭은 10% 내외라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리고 최대한 그 기준에 맞춰 투자 전략을 짜는 중이다. 스트레스 없는 투자, 롱런할 수 있는 투자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연평균 21%의 수익율을 보장하는 상품에 매년 천만원씩 투자한다고 가정했을 때 1억원을 만드는 데 몇년이 걸리는지 계산 한번 안해보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이런 투자가 존재할리 만무하지만 계산을 해보면 족히 5~6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한때 하루에 2천만원 정도의 금액은 잔돈 취급을 할 정도로 하찮게 여기던 자금운용까지 해봤지만 지금은 에임에서 개인당 평균 1100만원의 투자금액 다루고 있다. 누구에게는 쌈짓돈이고 전세자금인데 이걸 생면부지 사람에게 맡긴 만큼 항상 투자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남의 돈이 무섭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저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에요.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아득바득 살았던 적도 없고요. 물질은 내가 원한다고 오는게 아니자요” 고등학교때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건너 가자마자 금융 위기가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도 다급한 적은 없었다.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하고 금융업에 종사한 것도 아니었고 입사 이후 마침 경기가 호황 국면으로 바뀌던 타이밍이라 연봉에 몇배에 달하는 보너스를 받았을 뿐. 단지 운이 좋은 사람이라 소회할 뿐이다.
투자자일 때와 창업가일 때의 차이점은 투자자일 때는 될 만한 이유와 되지 않을 이유 중에서 안되는 이유에 대해 따져보는 시간이 많다. 투자운용사인 에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창업자는 다르다. 안될 것도 될 수 있을 방법에 대해 끈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 안되는 걸 되도록 만들때 비로소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인터뷰로 3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 명함을 주고 받으며 처음 소개로 했던 이야기 빼곤 별다른 회사 이야기가 없다. 대부분 이 대표가 그동안 살아온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자산 관리는 고객과 매니저 사이의 신뢰에서 시작된다. 신탁(信託)이 지닌 뜻인 ‘믿고 맡긴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두 단어는 항상 궤를 함께한다. 믿어야 맡길 수 있으니까.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고객도 신뢰가 생기는 법. 거의 세시간을 할애한 인터뷰가 회사 서비스 보다 그간 이 대표의 경험과 고민한 것에 대한 것들로 가득 찰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순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는 어린왕자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 대표는 유창하진 않지만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가며 이 대표 나름의 방법으로 신뢰를 형성해 갔다. 원래 가장 중요한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삼성역 사거리에서 회사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길에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당분간 기자의 머릿속엔 에임의 이지혜 대표는 첫눈 내리던 날 만난 인연으로 기억될 것이다. 회사 이야기 보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훨씬 많이 했던, ‘돈 욕심 없다’는 어느 특이한 자산운용사 대표를 만났던 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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