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슬칼럼] “한국은 과거 우리 청년들의 모험 창업을 위해 도전이 넘치는 사회였고 그런 도전을 통해 우리가 ICT에서 세계적인 강국으로 단시일 내에 부상했는데 어느덧 도전정신이 많이 없어졌다” “우리 사회와 국가가 청년 도전을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한 것인데, 이제 문재인 정부는 청년들의 모험적인 창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려고 한다”
지난 2월12일 울산 UNIST(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혁신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혁신 모험 펀드 10조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 발표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창업 지원정책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과연 문재인 정부의 희망대로 창업 지원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벤처 붐이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우선순위에서 좀 밀려 있는 감이 있으며 열정과 차별성이 없다.
우선 현 정부가 창업에 대한 열정은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현 정권내에서 창업정책의 위상을 살펴보기 위해 대선 정책 공약집을 한번 들춰봤다. 4대 비전, 12대 약속 가운데 창업 지원정책에 해당하는 것은 5번째 약속인 ‘성장동력이 넘치는 대한민국’을 이룩하기 위한 4번째 실천 과제로서 중소중견기업 육성이라는 항목이 있다. 여기에서 창업과 관련이 있는 것은 ‘벤처 등 중소기업 창업의 선순환 생태계 조성’이라는 내용이 전부다. 다만 첫 번째 실천과제인 미래성장동력확충에는 신생기업의 열기가 가득한 혁신 창업국가를 만들겠습니다‘라며 창업 지원의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지난해 7월19일 발표된 5대 국정목표에는 창업에 관한 부분이 좀 더 구체화돼 정리돼 있긴 하지만 그 비중이 높아지는 않았다는 인상이다. 5대 국정 목표 중 두 번째인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 전략 중 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이라는 항목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과거에 차별화된 창업 지원 정책은 아직까지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2월 유니스트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도 지난해 11월의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에서 제시한 내용에서 진전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전 정권인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며 나름대로 웬만한 지원 정책을 다 시도해 봤던던 탓일 수도 있고, 워낙 시급한 일이 많은 탓일 수도 있다.
둘째, 현 정부의 국정과제의 중점은 적폐청산이다. 과거의 적폐 청산을 해야만 미래로 전진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적폐청산은 속성상 지향점이 과거에 맞춰져 있다. 이는 스타트업 기업들의 사업 아이템이 대부분 ICT를 미래지향적 기술이라는 현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일은 그냥 매몰비용으로 처리해야 하고 철저하게 미래 지향적이어야 하는 사업의 속성과 뭔가 잘 안 맞는다. 이는 집권 세력이 철저한 정치지향적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경제가 중요하다고 얘기는 하지만 경제가 정치에 항상 밀리기 마련이다.
셋째, 현 정부의 두번째 관심사는 일자리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급선무다. 스타트업 육성도 결국 알고 보면 일자리 창출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지만 조금은 다르다. 스타트업 육성은 혁신 지향적 기술집약적 산업 육성에 초점이 두어져야 하지만 일자리는 다르다. 어떤 분야건 일자리를 많이 많들어내는 게 목적이다. 경우에 따라선 서로가 어긋날 수 있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일자리일 것이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현 정부의 주도세력들이 대부분 산업화 세력과 투쟁해온 민주화 세력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산업화 세력의 기반이 시장이었던 경험 때문에 체질적으로 기업에 대해 부정적이고 시장에 대한 신뢰가 약하다. 일자리 창출에 있어서 더 이상 민간 기업과 시장에 기대하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입장에서 알 수 있다. 결국 시장 친화적, 혁신지향적인 창업 지원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이고, 더 나아가서 스타트업 업계의 희망사항인 자생적인 혁신 생태계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말도 된다. 기존 방식대로 정부 주도의 퍼주기식 창업 지원 정책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다행인 것은 집권 세력이 ICT에 대한 이해도가 전임 정부들에 비해 월등히 높아 한동안 정부 정책에서 찬밥 신세였던 정보통신 산업이 뒤늦게 나마 잃어버린 구토를 수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고, 성장의 중점이 중소기업으로 옮겨가려는 정책을 편다는 점이다.
한국경제가 활력이 떨어지고 기업가 정신이 쇠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고보면 기존의 재벌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지 못한 탓이다. 스타트업들이 활성화돼야 성장 동력이 생겨난다는 원론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현실은 아직 많이 다른 것 같다.
엔슬협동조합은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은퇴한 조합원으로 구성된 청년 창업 액셀러레이터다. 조합원의 풍부한 경험과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필요한 자금과 네트워크,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엔슬협동조합은 경험과 전문성이 담긴 칼럼을 매주 벤처스퀘어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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