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광고제 벽면에 부착된 포스터. 한쪽면이 반쯤 찢어져 내려와있다. 찢어진 단면에서 눈을 떼던 찰나, 잘려나간 손가락이 눈에 들어온다. “손가락 잘렸는데 나가래요” 포스터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부당한 처우를 알리는 의도로 제작된 일종의 엠비언트 광고다. 찢어진 포스터 외에도 불타버린 포스터, 아동 노동을 반대하는 광고 등 6개의 엠비언트 광고가 부산국제광고제 곳곳에서 참관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엠비언트 광고를 설치한 주인공은 3년차 아이디엇. 부산국제광고제에서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포스터로 크고 작은 울림을 전하던 아이디엇을 만나봤다.
아이디어와 idiot(바보)의 합성어인 아이디엇은 아이디어에 죽고 아이디어에 사는 아이디어 바보들이 모인 광고 스타트업이다. 이정빈 아이디엇 공동대표는 “광고의 기존 본질인 아이디어에 집중하는 회사”라고 아이디엇을 소개했다. 이정빈, 이승재 두 공동대표가 의기투합해 2015년 설립한 아이디엇은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드 부문 동상, 2017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수상하며 대기업 광고회사가 주류를 광고판을 뒤흔들고 있다.
최근 홍대입구역 곳곳에 부착된 환경미화원 스티커도 아이디엇의 작품이다. 사무실 앞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모습을 본 두 대표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깨끗한 거리를 만들 수 있을까’ 길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쓰레기를 재미삼아 버리는 이는 없었다. 다만 쓰레기통의 위치를 몰랐을 뿐. 아이디엇은 쓰레기통 위치를 알려줄 수 있는 안내판 제작에 돌입했다. 물론 흔히 볼 수 있는 표지판이나 문구가 아닌, 아이디엇만의 방식으로. 퍙소 일회용 커피컵이나 음료수가 버려지는 난간에 29cm 미니 환경미화원 스티커를 부착했다. “이곳은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문구와 쓰레기통이 위치한 방향과 거리를 나타냈다.
작은 스티커 한 장은 사람들을 움직였다. 스티커를 본 시민의 97%는 쓰레기통에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이정빈 대표는 “환경미화원 또한 설치 전 후 쓰레기 감소를 체감한다고 밝혔다”고 전한다. 홍대입구역에서 시작된 캠페인은 마포구 50여곳, 시흥시, 인천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승재 대표는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것을 발견하고 우리의 아이디어로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며 조금 더 우리만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응급처치의 날 캠페인, 시각장애인의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한 캠페인, 안전벨트 착용 독려 광고까지. 밖으로 보여진 부분만 보면 공익캠페인, 엠비언트 광고에 특화된 팀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아이디엇의 활동 범주는 그보다 더 광범위하다. 사람들에게 소구할만한 메시지를 전하는 일 모두에 능하다고 보는 편이 더 가깝다. 경계는 없다. 사람들이 정보를 접하고 소통하는 매체를 통해 의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능하다. 광고 스타트업답게 기성 아이디어보다는 해보지 않은 방법,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영역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점을 제안하고 있다.
아이디엇이 본인들의 강점이라고 꼽는 브랜딩도 마찬가지. 이정빈 대표는 “브랜드의 상황과 문제점, 솔루션을 통해 해결하는 일. 예컨대 브랜드 슬로건을 재정의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의 마케팅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에 자신있다”고 말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광고와 마케팅의 범주가 허물어진 상황이 오히려 이들에겐 해보지 않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 좋은 상황인 것. 실제 광고 대행사에서는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아이디어 부띠끄로 아이디엇을 찾고 있다. 현대건설, 기업은행, 서울시 등 민간과 공공기간 모두가 이들의 고객사다.
기존 대형 광고 마케팅 틈을 뚫고 굳이 스타트업으로 살고 있는 이유를 묻자 “광고가 너무 좋아서”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승재 대표는 “광고안에 모든게 다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되 옳은 메시지를 전해야하니 철학적인 눈을 지녀야 한다.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문학, 음악, 미술, 영상적 기법이 녹아든다. 전략적인 시장조사는 물론이다. 각각의 요소는 고객과 소비자가 놓인 문맥에 따라 달리 조합되니 광고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트렌디함과 아이디어가 주 무기가 되는 업계 특성상 무뎌짐에 대한 고민은 없을까. 이정빈 대표는 “날카로우면 더 날카로워졌지, 무뎌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승재 대표 또한 같은 생각이다. 광고쟁이에게 필요한 트렌드, 메시지 전달방식을 논리적으로 구축하는 힘, 즉 생각하는 힘은 나이가 들면 더 강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두 대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세대와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나누고 다른 부분은 접목하면 더 큰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계속 목마르다” 3년차 아이디엇에겐 아직 해본 일보다 해야 할 분야가 더 많이 남았다. 이승재 대표는 “크레이에티브한 영역이라면 못해본 영역의 크레이이티브를 해보고 싶다”며 주무대를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고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까운 미래 아이디엇만의 브랜드 기획도 염두에 두고 있다. 두 대표의 자신감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서로가 가장 믿고 찾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엇만의 영업비밀이자 주무기는 바로 팀원들. 이정빈 대표는 아이디어의 원천을 ‘이승재 대표의 머리’로, 이승재 대표 또한 그의 아이디어 원천을 ‘이정빈 대표의 머리’라고 말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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