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같은 유리천장을 뚫고 왔다. 그동안 매번 여성으로 넘어야 할 얕고 높은 산이 많았던 것 같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송 의원은 전자계산학 전공 후 IT회사에 입사, 이후 KT 임원을 거쳐 국회에 입성했다. 송 의원은 “전공을 택할 때도 여자가 컴퓨터 공학과를 가려 하냐고 물었다. 첫 직장에서 과장, 차장이 될 때도 (주위에서) 여성도 차장, 과장이 되는구나 했다”며 “이제는 여성이 (벽을) 뛰어 넘고 우리를 바라보고 뛰어오는 여성 후배가 용기를 얻고 많은 도전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이 ICT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끌기 위해서는 학업 기간부터 취업 활동, 구직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에 마주하는 캐즘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캐즘은 사전적 의미로는 아주 깊은 틈을 의미한다. 경제 용어로 풀이하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 같은 정체 상태를 의미한다. 토론회에 참여한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 대표인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 이동인 IT여성기업인협회 수석부회장, 권선주 블루클라우드 대표, 지은희 소프트웨어 정책연구소 여성 ICT 리더는 실질적인 정책 도입과 인식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캐즘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ICT 여성 인력 관련 정책은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정책을 큰 줄기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산자원부에 마련돼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마련한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정책은 학업 기간 ICT 분야 역량을 발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래 여성과학기술인으로 유입을 촉진하고 신산업 분야 여성과학기술인을 양성한다는 그림이다. 이를 위해 여학생의 STAEM 분야 교육 확대와 초, 중등 여학생의 컴퓨터 및 IT 분야 치밀도 제고, ICT 분야 R&D 역량을 갖춘 여성 고급 인재 양성에 나선다.
여성기업활동 촉진 정책도 마련돼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매년 내놓고 있는 2019년 기본계획에 따르면 창업 단계별 여성 기업 전용 우대 프로그램과 여성전용 벤처펀드, 취약계층 여성가장 창업 지원 기금, 여성기업 공공구매 등 여성 기업인 친화적 정책에 초점을 맞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산업현장의 여성 R&D인력 참여확산 정책 또한 경력단절을 방지하고 지속적이 역량 강화에 무게를 둔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지은희 소프트웨어 정책연구소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 시수 확보 등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교사나 교재 부족 등 정책적 기대를 실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교과과정과 대학, 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면서 교육 참여층을 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기업 판로 확대를 위해 마련한 여성기업 확인 제도에서도 현실적인 한계가 드러난다. 서미숙 에스엠에스 대표는 “여성기업 확인서를 보유한 기업은 공공기관에 수의계약으로 물건을 납품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책임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의계약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좋은 제도를 발굴하는 것도 좋지만 현존하는 제도만이라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단순히 여성 ICT 인재 수만 늘리는 정책뿐 아니라 여성의 창업 및 기업 활동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권선주 블루클라우드 대표는 남성편향적인 VC 생태계를 지적했다. 권 대표는 모바일 게임업체 이매그넷을 거쳐 현재 헬스케어 게이미케이션 블루클라우드를 운영하는 여성 대표다. 그는 “2016년 기준 여성 창업자는 9%다. 그 중 투자 받은 IT 스타트업은 6%라며 “결코 남성 창업자보다 부족해서 투자 유치가 적은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여성 심사역 비율 자체가 낮은 벤처캐피털 생태계에서 여성 창업자가 실질적인 멘토링을 받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2019년 델 테크놀로지가 세계 50개 도시를 대상으로 발표한 2019 여성기업가 시티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 생태계가 비교적 잘 조성돼 있다고 평가받는 서울만 해도 여성 창업 및 기업가 환경 순위는 50개 도시 중 41위다. 이 중 여성 창업자나 임원이 재직 중인 기업 중 2단계 이상 펀드를 유치한 기업 비율은 36위다. 남녀 성비는 전체 최하위권인 50위였다. 창업활동을 위해 멘토나 롤 모델을 구할 수 있는 기회는 31위로 문화 부문 역시 평균치보다 낮았다. 권 대표는 “ICT업계 여성 취·창업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 종사자를 늘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며 “IT산업 전반에 여성 인력이 배치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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