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쌀을 제대로 즐기지 않고 있다. 식당에 가도 온장고에 미리 지어놓은 묵은 쌀밥을 먹게 된다. 다양한 품종, 품종별 특징도 알려지지 않아 골라서 먹는다는 생각도 별로 없다. 하지만 커피 원두나 와인처럼 쌀도 얼마든지 취향따라 즐길 수 있다. 좀 더 지출하더라도 더 건강하고 맛있고 의미있게 한 끼를 즐기는 트렌드를 만들겠다.”
쌀 편집숍 ‘동네정미소’에 가면 전국에서 생산된 쌀과 잡곡, 콩, 저농 소주와 막걸리를 만날 수 있다. 쌀과 곁들일 수 있는 반찬과 참기름, 들기름, 입맛과 함께 눈까지 즐겁게 해줄 굿즈도 있다. 3명 공동대표 가운데 사업운영을 맡은 김동규 대표는 “밥을 맛있게 먹는 문화와 시스템을 소개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아코메야’라는 일본 쌀전문 편집샵 사례도 있어 우리도 단순 캠페인 대신 사업 모델로 만들고 싶었다”며 사업 배경을 전했다.
쌀 소비도 줄었다는데 쌀 편집샵이 얼마나 잘될까 싶은 의문도 생기지만 의외로 경쟁사로 꼽을 만한 곳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동규 대표는 “직접 키우는 품종을 팔거나 온라인 중심으로 판매하는 곳도 많다”며 동네정미소의 차별점으로 “우리만큼 다양한 품종을 취급하는 곳은 별로 없다. 도정기를 두고 그 자리에서 도정하는 곳이나 광교점처럼 식사 주문도 받는 곳도 드물다”고 말했다.
김 대표 말대로 지난해 6월 오픈한 광교점은 ‘백문이 불여일미’ 차원에서 한 상 차림도 선보이고 있다. 메뉴는 아침에 갓 도정한 쌀로 지은 밥과 화학 조미료를 넣지 않고 제철따라 만든 반찬으로 구성했다. 쌀을 짓는 법이 특별한 건 아니다. 현미는 압력밥솥으로 짓지만 백미는 가정집에서 쓰는 일반적인 전기 밥솥을 쓴다. 동네정미소에서 맛본 쌀은 집에서도 충분히 맛있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동네정미소를 통해 소비 저변을 넓히려는 것인지, 쌀을 원래 좋아하는 이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주려는 것인지 묻자 김 대표는 “둘 다”라며 “1차로는 쌀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을 겨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힘을 기반으로 저변을 넓힐 수 있다. 문화가 바뀌려면 쌀에 대한 철학, 공급과 소비, 가격 정책까지 복합적으로 받쳐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가도 못한 것을 우리가 하긴 어렵다. 그래도 쌀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진 이들, 생산자가 많다. 이들과 함께 매력적인 상품, 브랜드를 확보해 매장을 늘리면 어느 단계를 넘어서서 문화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큰 인기를 끈 상품으로는 시그니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정미오미’를 꼽았다. 정미오미는 4인분에 해당하는 450g짜리 소분팩 5가지로 구성, 다양한 품종을 1~2끼별로 즐길 수 있다. 쌀을 모티브 삼은 식탁매트와 묶어 판매하는 토종쌀 에디션이나 토종 콩 제품도 많이 팔린다는 소개다. 주요 고객은 아이를 키우는 가구나 소비력이 비교적 높은 중장년층. 처음엔 소포장 제품을 앞세워 1인 가구와 젊은층을 타겟 삼았지만 이들은 바빠서 직접 밥을 해먹는 횟수가 적고 식사비용을 아끼는 편이라 예상과는 반응이 조금 달랐다는 것. 물론 다양한 선호가 있어 1~2인 가구 중에서도 소포장 제품을 찾는 이들을 단골로 포섭하기도 했다.
“꾸준히 찾는 단골은 4인 가구 기준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구매하는 것 같다. 홈페이지나 네이버 스토어팜으로도 판매하기 때문에 멀리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그래도 쌀은 2주 안에 소비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정미식구’란 이름으로 회원제 정기배송 서비스도 운영해 격주 단위로 쌀 1~2kg를 배송하고 있다.”
도정 작업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는지 묻자 “지방에 대형 RPC(미곡종합처리장)를 두는 곳도 있지만 아직은 그럴 여력이 없다”며 “괴산에 쌀 창고를 두고 산폐 위험을 감안해 현미를 제외하고는 나락 상태로 보관한다. 서울과 수원 매장에서 일주일 단위로 로테이션한다는 가정 하에 간이 도정기로 도정하고 있다. 쌀 창고는 경기도권으로 이전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반기 안에는 서울에 매장을 한 곳 더 열 계획이다. 광교점과 마찬가지로 식사 서비스도 제공할지 쌀 전문 편집샵으로 다양한 상품군을 판매하는 데 집중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쌀로 만든 음료나 과자, 누룽지 간식은 간단 메뉴로라도 선보일 생각이다. 토종 쌀이나 콩을 사용한 주먹밥도 생각하고 있다. 쌀만 파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특징을 살린 메뉴를 개발하려 한다”며 “백화점 입점 제안도 들어왔고 위탁 판매 방식은 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김 대표는 덧붙였다.
품종 확보에 있어서는 공동대표들이 가진 경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농민 단체와 일한 사람도 있고 지역상생사업단에서 근무한 사람도 있다. 다양한 품종을 확보하려면 전국 네트워크가 필요한데 우리는 광역단위별로 적어도 한 품종씩은 받을 수 있다. 농업법인, 협동조합마다 생산하는 쌀빵이나 누룽지 같은 특화 상품도 쉽게 구했다.”
각 대표가 확보한 네트워크는 브랜딩에서도 강점을 발한다. 누가 쌀을 생산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이들의 주관과 고집, 생산 스토리를 상품에 입힐 수 있고 원체 정보가 부족한 토종 쌀이나 콩도 소개할 수 있다. 이미 ‘정미소테레비’란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 “국내는 일반미뿐 아니라 지역마다 재배하는 토종쌀이 1,451종에 이른다. 이를 복원하려는 농부들도 있다. 첨가물 없이 쌀로 만든 음료나 술, 과자, 빵도 이미 많다. 우리 역할은 갓 도정한 쌀을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곳저곳에 흩어진 상품을 모아 재밌는 콘텐츠와 포장, 디자인해 가치를 더하는 일이다.”
쌀에 부가가치를 더하는 작업이 유효할지에 대해선 “요즘에는 좀 비싸더라도 취향에 맞는 소비, 사회적인 가치가 더 높은 소비, 더 건강한 제품을 따르는 추세”라며 “커피도 처음에는 한 끼값을 주고 사먹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질 거라 아무도 생각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원두부터 골라사고 기기를 사서 집에서 직접 로스팅하는 문화가 보편화됐다. 부가가치를 더하는 작업이 돈이 된다는 생각보다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우리도 브랜딩과 콘텐츠를 통해 이윤을 남긴다면 농민에게 돌아갈 몫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신규매장 개설과 함께 또다른 계획이 있는지 묻자 “광교점과 신규 매장을 안정화시키고 온라인몰에도 많이 입점하려 한다. 김포공항에 롯데백화점이 오픈하는 라이프스타일 매장, 위쿡 송파 매장, 한국 민속촌에도 입점을 앞두고 있다. 가급적이면 올해 안에 프랜차이즈 1호점을 내고 3년 안에는 100호점으로 확대하겠다. 소셜 프랜차이즈 형태로 브랜드와 매장으로 확장해 소비자에게는 경험 기회를 늘리고 생산자에게는 공급량을 보장하겠다”며 김 대표는 “동네정미소가 제안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많이 경험해주면 좋겠다. 2년간 다진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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