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은 여러분이 불러주는 겁니다. Milonga, come out and dance with me” 행사 개최자 케빈이 흥을 돋웠다. 라틴 그래미 후보 마리아 블론테가 기타줄을 튕겼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실에서 흘러나온 탱고 선율은 랜선을 타고 서울과 도쿄,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노트북 앞에 모여든 참가자들은 케빈이 알려준 대로 가사를 읊조렸다. “Milonga, come out and~” 모니터 속 누군가는 어깨를 들썩이기도, 다른 누군가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에어비앤비가 9일 전 세계 액티비티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체험 출시를 발표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여행, 숙박을 비롯한 여가 산업이 주춤한 가운데 에어비앤비가 기존 사업 모델 중 일부를 비대면으로 전환한 것. 전 세계 700만 숙소, 4만 여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어비앤비는 온라인 체험 모델로 호스트와 게스트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호스트에게는 수익 창출을, 외부 활동이 제한된 게스트에게는 체험 활동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부에노스 아에레스에서 열린 ‘라틴 그래미상 후보의 소규모 콘서트’ 역시 에어비앤비 온라인 체험으로 진행됐다. 호스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으로 라틴 그래미 후보 탱고 가수인 마리아 블론테와 캘리포니아 출신 하모니카 연주자 케빈이다. 체험은 온라인 화상 솔루션 ‘줌’에서 진행됐다. 체험별로 호스트가 인원 수를 제한할 수 있고 소규모 그룹별 참여도 가능하다. 이 날은 서울, 도쿄,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게스트 다섯 명이 참여했다. 호스트는 각 체험마다 진행 언어를 사전에 공지한다. 탱고 체험은 영어와 스페인어가 주 언어지만 이 날은 온전이 영어로 진행됐다.
체험 시간에 맞춰 입장하자 호스트와 이미 입장한 게스트들이 신규 게스트를 반겼다. 한 게스트는 캘리포니아 해변을 배경으로, 다른 게스트는 집 거실에서 병맥주를 들고 앉아있다.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 있는 누군가와 한 자리에 모여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친숙하게 다가온 순간이다. 게스트들이 다 모이자 호스트 중 한 명인 케빈이 게스트에게 한 명씩 말을 걸며 대화를 주도한다. 카메라를 끈 채 입장한 사람은 단 둘. 모두 서울 참가자다.
케빈은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 거실에서 모여 콘서트를 진행하게 되어 기쁘다”며 “밥을 먹으면서 보거나 질문을 하거나 자유롭게 참여하면서 탱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포문을 열었다. 케빈은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한 탱고 태동기, 황금기, 다양한 문화권과 섞이면서 확산과 변천을 거듭한 탱고 등 굵직한 탱고 역사와 인물을 소개했다. 소주제별 이야기를 마친 후에는 또 다른 호스트인 마리아 블론테가 그 당시 탱고를 노래로 전했다.
케빈의 입담과 마리아의 노래가 어우러지면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노래가 끝난 이후 카메라에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은 케빈의 리드에 맞춰 마지막 곡을 따라 불렀다. 불과 1시간 전만해도 초반 카메라를 응시하며 간간히 이모티콘을 날리던 게스트들은 한 목소리로 낯선 탱고 리듬을 따라갔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게스트들은 카메라 앞에 너도나도 엄지를 치켜 세웠다. 케빈이 이끈 1시간 반 코스 온라인 체험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체험 후 알게된 건 새로운 경험을 위해 참가자 모두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어비앤비 서비스 페이지에는 온라인 체험 준비물은 ‘없다’고 쓰여있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낯선 순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 서로를 응시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현장에서 직접 마주하는 것과 달리 더 적극적인 소통 의지가 중요하다. 카메라를 꺼놓은 서울 게스트에 케빈이 “우리는 멀리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참여를 독려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낯선 경험이 기억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언어 또한 크고 작은 장벽이 될 수 있지만 인류 공통어인 바디랭귀지와 이모티콘이 있는한 부족함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다.
체험은 종류별로 다르지만 1인당 1~2만원 선이다. 낯선 경험과 새로운 사람과의 소통을 온라인에서도 이어가는 데 그만큼의 비용을 기꺼이 투자할 수 있다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준은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살아가면서 한 번도 마주칠 일 없는 지구 반대편 사람과 같은 시간 함께 입을 맞추는 일도 포함된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케빈 역시 마지막 연주 이후 “아주 먼 곳에 떨어져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훌륭한 관객과 함께 한 색다른 연주,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에어비앤비는 케빈이 이끈 온라인 공연 외에도 점성술 워크숍, 명상, 플라맹고, 전통식 만들기 등 기존 체험을 온라인으로 옮겨오고 있다. 현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물론 전 세계 각계각층 전문가가 온라인 체험 공유를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에어비앤비는 온라인 체험을 수천 개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스트에게는 줌 무료 이용 권한과 온라인 콘텐츠 기획, 녹화, 공유를 도와주는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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