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해마다 국내 매년 10만 명 이상 뇌졸중 환자가 발생한다. 이중 만성 언어장애를 얻게 되는 경우는 물론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등 신경성 장애나 뇌 신경 손상은 후천적 언어장애를 동반할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성인 언어치료의 결정적 순간을 잡아야 한다”유현지 리햅위더스 대표가 성인 언어치료 플랫폼 리플을 만든 이유 중 하나다. 뇌 신경질환의 경우 유의미한 치료 시기는 발병 3~6개월, 늦어도 1년 내다. 언어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치료사를 찾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그리 시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지난해 9월 출시한 리플은 성인 언어장애 환자와 언어치료사를 한 곳에서 만나도록 했다. 환자 증상과 언어장애 정도, 원하는 치료 일자 등 관련 정보를 입력하면 언어치료사가 집으로 방문해 언어치료를 진행하는 식이다. 리플 플랫폼 출시 이후 매달 성장률은 100% 이상이다. 치료 적기에 적합한 치료사를 만날 수 있도록 구성해 이용자 간 호응이 높다는 설명이다.
“의사소통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어치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유 대표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후 연세대에서 언어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성인 언어치료 전문가다. 유 대표는 “언어치료는 의사소통 기능을 회복하는 개념”이라며 “환자가 겪은 신경장애 유형과 중증도, 상황을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복 가능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분류하고 의사소통 회복과 대체수단을 찾는 치료”라고 설명했다.
성인 언어치료는 국내에서는 비교적 신생 학문이지만 외국에서는 꾸준한 연구와 임상을 통해 전문성을 확립한 분야다. 미국만 해도 석사 이상 전문 인력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활동할 만큼 전문화됐다. 국내 사정은 조금 다르다. 국내의 경우 아동 언어장애 연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치료와 전문가 양성 역시 아동 언어장애 분야에 쏠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성인 언어장애는 전공 이후에도 활동할 수 있는 기관이 부족해 전문가를 배출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환자 입장에서는 성인 언어장애 치료사를 찾아 제때 치료를 받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고민은 이어졌다. 성인 언어치료를 전공해도 임신과 출산 이후 경력 단절이 되는 경우도 대다수였다
유 대표는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학계와 임상에서 성인 언어장애를 평가할 수 있는 도구와 치료 방법이 정립돼 왔다. 사업화를 통해 저변을 확대할 적합한 때라고 봤다. 환자를 생각하면 더는 미룰 수도 없는 시급한 문제였다” 함께 성인 언어치료 분야에 매진해온 동료들도 사업화 필요성을 절감하는 분위기였다. 선배들이 학문적 기틀을 다지느라 확대되지 못했다면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때라는 데 마음이 모아졌다.
“사업이 확장되려면 반드시 공급자 풀이 넓어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공급자를 키우는 게 우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 플랫폼에서 치료사와 환자를 연결하는 것은 물론 전문 치료사 양성에도 힘쓰고 있는 배경이다. 성인 언어치료 전문 기관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는 각자의 사례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치료 방법을 찾는 것 또한 치료의 질을 높이는 유용한 방법이 된다. 치료사를 대상으로 한 컨퍼런스, 방문 치료 전 사례 공유와 연구가 이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 대표는 나아가 “성인 언어치료 저변을 높이고 언어치료사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싶다”고 밝혔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에 대해 안타까움도 있지만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언어치료 영역을 재조명한다는 뜻에서다. 유 대표는 “환자분들이 언어치료사를 부를 때 단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삶 전반에 관여하고 개선하는 동반자로 생각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에 쌓인 치료 관련 데이터는 언어 치료 모델 개발에 활용될 예정이다. 집에서 활용할 수 있는 언어치료 앱이 대표적인 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비용 부담 때문에 주기적으로 치료 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다. 치료대상 범주도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성인 신경 언어장애 외에도 발음, 조음, 목소리 등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 개발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유 대표는 “치료 도구 개발을 위해서는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지만 언어치료가 이뤄지는 대학병원에서는 자세한 데이터가 주기적으로 쌓이기 어려웠다”며 “리플 플랫폼을 통해 언어치료 사례, 경과 등 유의미한 데이터를 쌓으면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자와 수요자, 연결과 교육, 저변 확대와 인재양성까지 해야 할 일이 적진 않지만 유 대표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겠지만 박소현 원장과 라면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다. 리햅위더스 공동창업자 박소현 원장은 유 대표와 대학원 시절부터 함께였다.
유 대표가 학계를 배경으로 이론에 충실하다면 박 원장은 환자 경험이 풍부한 현장파다. 유 대표와 박 원장은 “이론과 실천 서로 다른 성향이지만 상호보완 관계이자 최고의 파트너”라며 입을 모았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오히려 생산적 토론이 가능하다는 게 두 사람의 말이다. 유 대표는 “환자와 교감하고 현장에서 치료하는 방법 면에서는 박 원장을 따라갈 수 없다”고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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