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회사, 같은 약관 (?)
스타트업 약관 검토 자문을 하다 보면 재밌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회사인데 같은 약관을 쓰고 있다. 약관이 일반적으로 공개되어 있다 보니, 보통 홈페이지 및 가입서비스를 열면서, 다른 회사 약관을 그대로 긁어서 쓰시는 경우를 많이 본다. 동종 업계 것을 쓰면 그나마 양반이다. 전혀 다른 업계의 약관을 (맞지도 않는데) 그대로 베껴 쓰시는 경우도 있다. 저작권 문제는 둘째 치고, 나중에 발목 잡힐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셔야 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감히 약관 계의 어머니를 꼽자면, 유명 스타트업 B모 회사와, 이미 벤처라기엔 너무 큰 포털회사 N모 회사의 약관을 들 수 있겠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위 회사 약관이 본인들에게 잘 맞지 않는 것을 모르고 그냥 ‘큰 회사니까 알아서 검토했겠지’라고 생각하며 쓰시곤 한다. 그러나 업종이 완전히 똑같지 않는 이상, 대부분 본인들 회사와 잘 맞지는 않는다. 저작권 등도 고려하면, 어쨌거나 본인들의 상황에 맞추어 쓰시는 것이 권고된다.
초기 스타트업들이 약관 검토를 위해 별도 비용을 지출할 여력이 없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업계 표준약관이 있는지라도 한번 찾아보고, 이를 활용하면 좋다. 아니면 기존 레거시 사업들에 대하여는 공정위에서 배포하고 있는 표준약관이 많다. 이를 활용해서 조정하여 쓰면 좋다. 다만, 표준약관의 특성상 매우 공정하게(?) 초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인 회사에 유리하게 어느 정도 조정하여 쓰시길 권고드린다.
◆ 약관은 가장 기본적인 계약서… “이루다” 사건 등 반면교사 되어야
약관은 “그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에 상관없이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의미한다{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규제법”) 제2조 제1호}. 쉽게 말하면 불특정 다수와 체결하는 계약이다. 개별 거래처와의 계약서는 꼼꼼하게 살펴보고 고민하면서, 의외로 수 만 명, 수십 만 명의 소비자와 체결하는 계약서인 약관은 부실한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점이다.
최근 문제되었던 “이루다” 사건에서도 약관에 큰 문제가 있었다(현재, 필자 소속 법무법인에서 소송 진행 중이다). 정보수집 및 활용의 목적 기재가 적정하지 않았다. 약관은 사업이 문제 없이 돌아갈 때는 모르지만, 문제가 제기되면 큰 타격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매우 많은 사용자들과 “약속”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 약관이 불명확하면,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 불공정하면 아예 무효
약관이 일반 계약서에 비하여 더 큰 규제를 받는 것은 바로 약관규제법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와 정해진 내용으로 계약하는 약관의 특성상, 고객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것은 무효가 된다(약관규제법 제5조). 약관조항의 뜻이 불명확 할 때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된다(약관규제법 제5조 제2항). 원래 계약서란 양 당사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체결하는 것인데, 변경의 여지 없이 불특정 다수와 체결되는 약관의 특성 때문이다.
◆ “환불 불가”, 유효할까?
예를 들어보면, B2C 사업을 하는 회사 입장에서 “환불 불가” 조항의 매력은 불가항력적이다. 이러한 규정이 늘 무효가 되는 건 아니다. 예컨대 ‘부킹닷컴’의 ‘환불불가 상품’에 대하여 공정위가 약관규제법 위반을 이유로 시정조치를 하였고, 이에 ‘부킹닷컴’ 측이 불복하여 소송하였는데, 법원은 ‘부킹닷컴’ 측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20. 5. 20. 선고 2019누38108 판결). 근거는 ‘환불불가 상품’이 ‘환불가능 상품’에 비하여 저렴하고, 소비자가 양자를 모두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반면 무효로 판단된 사례도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10. 24. 선고 2018나29442 판결). 항공권 중개 사이트인 W 회사는 7일 내 환불(청약철회권 행사)시 일정 금액의 환불위약금을 공제하고 반환하도록 약관에 규정하고 있으면서, 소비자인 X, Y씨에게 국내 A항공사의 티켓을 판매하였다. 이후 두 사람이 출발 약 40일 전이면서, 구매일로부터 7일 이내에 철회를 하였으나, 위약금 규정을 이유로 항공권 대금에서 위약금(21만원 상당)을 공제하고 반환하고, 한편으로 본인들의 발권대행수수료 2만원도 환급하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소비자가 (고작 21만원에 불과하지만) 변호사까지 선임하여 소송으로 위 금액의 환불을 주장하였고, 결국 법원에서 소비자의 손을 들어 W 회사 측이 전부 패소하여 위 환불위약금과 발권대행수수료 모두 반환하게 되었다(*직접 무효의 근거로 적용된 것은 전자상거래법 청약철회 관련 규정이지만, 약관규제법 제5조의 취지와 같은 조항이다).
◆ 약관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
즉 약관 규정이 ‘너무’ 과도하게 사업자에게만 유리한 경우 무효가 될 수 있다. 이 적정기준은 어떻게 정해질까? (1) 첫째, 공정위 고시 등에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좋다. 또는 소비자원 등에서 지침을 내려주는 업종도 있다. 이를 어느 정도 고려하여 판단하면 된다. (2) 기존 레거시 산업들과 다른 새로운 서비스 등 신규 업종이어서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는 경우에는 어떤가? 상대적으로 유사한 업종의 기준을 최대한 참고하되, 그조차도 없다면 잠정적으로 적당한 균형을 맞추어 두고, 간단히라도 법률자문을 받아보는 것을 권고한다.
◆ 경영진들에게 드리는 첨언
위 모든 검토에도 불구하고, 실제 손해가 소액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약관 위반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아주 많지는 않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1) 이루다 사건과 같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 또는 (2) 소비자 응대 시 이른바 ‘감정’이 상해서 해당 소비자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다.
법률적인 입장에서, (1)을 방지하기 위하여 비즈니스와 직접 관련 있는 부분(예를 들어 IT B2C 기업의 경우 개인정보 관련)에 대해서는 반드시 신중한 검토(가능하면 변호사의 조언)를 하시길 권고 드린다. 한편으로 비법률적인 자문이기는 한데, (2)를 방지하기 위해 약관의 적법성과 관련 없이 잘 달래서 사과 드리도록 하는 실질적 자문을 드리기도 한다. 위 W 회사 사건의 경우 같이, 고작 21만원을 받기 위해 수십 배에 달하는 소송비용을 쓰는 고객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약관의 경우 불명확할 때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늘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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