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심리적 격변을 겪어 보신 분들은, 안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불안했기에. 사춘기가 끝났다는 사실에 정말로 상쾌하셨을 겁니다. 물론 사춘기라는 게 학교 졸업처럼, 몇 월 몇 일부터 끝나는 건 아니지만요. 입시에 바뻐서 대학에 입학해서 적응하다 보면, 사춘기라는 것을 겪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죠. 아무튼 그렇게 한 때의 기억으로 사라자 버린 사춘기를 살면서 다시 만나리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춘기란 놈, 그렇게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 듯요.
힘든 취업 경쟁을 뚫고 회사에 입사해서 정신없이 적응을 하던 어느날, 갑자기 심리적으로 이상한 변화를 겪습니다. 주위에서 다들 좋은 회사 갔다고 부러워 하는데,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을 제대로 못해서 상사에게 꾸중을 심하게 들은 날이면, 갑자기 내가 꿈꾼 회사생활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직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죠. 사소한 일에도 걱정이 많아지고, 월요일 아침이면 세상이 멸명한 것처럼 의욕이 사라져 버립니다.
길고도 장황하게 썼지만, 이런 증상들은 십 여년 전에 사라져 버린 감정, 즉 사춘기 때 느낀 심리적 격변과 비슷합니다. 이런! 사라졌다고 믿었던 사춘기가 여러분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성장했듯이 이 사춘기는 직장인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여러분 등에 딱 달라 붙어 버렸습니다. 없어졌다고 믿었던 적이 나타나면 항상 그렇듯이, 이 직장인 사춘기는 한 층 더 업그레이드해서 여러분을 괴롭히죠.
청소년기 사춘기는 몸과 마음의 성장 사이에서 싱크가 맞지 않는 데서 오는 증상이었죠. 따라서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 큰 어른들이 겪는 직장인 사춘기는 왜 생기는 걸까요? 저는 직장인 사춘기도 청소년기 사춘기와 메카니즘은 비슷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원인이 다를 뿐이죠. 직장인 사춘기의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그에 걸맞는 정신은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처음에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 밥벌이를 해결해야 하는 삶의 터전으로 바뀌거나, 다들 돈 많이 받고 평판이 괜찮다는 이유로 들어간 대기업에서 야근에 특근으로 몸과 마음이 축나는 것을 느끼거나, 먹고 살자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존 논리에 처절히 지배를 받으면서 날마다 극기의 시간으로 회사생활으로 채워나가는 것의 이면에는, 먹고 살려면 어쨌든지 회사를 다녀야 하는 외적 제약과, 먹고 사는 것 이외의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없는 노동이 주는 내적 고통이 커질수록… 우리는 성장기 때 겪는 사춘기 성장통을 직장인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감내해야 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직장인 사춘기를 해결하려고 우리가 흔히 찾는 해결책인, 이직, 학업, 전직은 어떻게 보면 대증적인 요법에 지나지 않는 듯합니다. 즉 밥벌이의 외적 제약을 월급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월급을 얻기 위해 쏟는 노동력이 기쁨은 주지 못하고 고통만을 주는 상황은 이직, 학업, 전직으로 바뀐 상황에서 주위환경만 맞으면 다시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직장인 사춘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전 정공법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직장인 사춘기를 일으키는 원인인 경제적 제약이나 내적 고통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선 경제적 제약을 없애는 방법으로 사업, 부모님의 재산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만, 어느 하나 쉽지 않은 해결책이죠. 차라리 경제적 제약처럼 내가 쉽게 조절할 수 없는 변수를 건드리기보다, 내가 상대적으로 쉽게 조절할 수 있는 변수인 내적 고통을 제거하는 편이 낫습니다.
노동에는 빛과 어둠이 있습니다. 어두운 면을 보자면, 밥벌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 노동은 직장인 사춘기에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노동은 더 이상 내적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자아 발전의 수단이 됩니다. 상당히 뻔한 이야기인데요. 노동은 즐김의 대상으로 승화하려면,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정말로 원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대개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으로 일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직장인 사춘기의 가장 큰 원인이죠.
따라서 어느날 직장인 사춘기가 나를 찾아 온다면, 일단 최대한 자신을 객관화하고 그속에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직장인 사춘기가 주는 고통이 괴롭다는 이유로, 자신을 객관화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이직, 전직, 학업 등의 대증적인 요법에 매달린다면, 옮긴 환경 속에서 어느날 잊었다고 생각하는 직장인 사춘기를 다시 만날 수도 있습니다.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이 주어졌듯이, 우리에게도 비슷한 약이 주어집니다. 현실을 객관화하고 진짜 나를 찾아 과정과, 나를 포장하고 누군가의 내가 되는 과정 말입니다. 어쩌면 직장인 사춘기는, 이런 빨간약과 파란약의 성질을 모두 갖춘 것일지도 모릅니다. 문득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직장인 사춘기를 어떻게 대할지에 따라서 약 성질이 바뀌는 게 아닐까요?
이 글은 제가 쓴 책인 ‘시지프를 다시 생각하다’에서 다루지 못한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이 책에세는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슬럼프와 그 극복과정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책의 샘플을 MP3파일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322